알렉산더 캠벨의 침례론(Baptism of Alexander Campbell)

조동호 목사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의 교회를 떠나 다른 교단에서는 알렉산더 캠벨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환원운동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캠벨에 대해서 연구할 만한 서적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깊이 알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서 그가 쓴 일차적인 자료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침례론에 대해서 논의해 볼 생각이다. 캠벨의 침례론에 대한 이해는 곧 그의 중심사상의 이해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침례론은 그가 평생을 바쳐 회복하려고 했던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캠벨(1788-1866)은 교회 일치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토마스 캠벨의 아들이며, 19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활동한 훌륭한 신학자요, 교육가요, 저술가요, 사업가요, 토론가였으며, 환원운동을 주창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 최초의 목사였다.(1 캠벨은 성서번역 사업에 종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글을 남긴 신학자요, 베다니 대학을 세우고 가르친 교육가요, 출판사와 농장을 경영한 사업가요, 양의 품종까지도 개량한 영농가였으며, 무신론자이며 협동조합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웬과의 토론을 비롯해서 수많은 토론회를 벌린 토론가 였다. 그는 칼뱅이나 요한 낙스, 요한 웨슬리 또는 마르틴 루터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마르틴 루터가 성서에서 멀리 벗어난 중세 카톨릭교회로부터 성서로 돌아가는 개혁을 시도했다고 하면, 알렉산더 캠벨은 개신교회의 분열로부터의 연합과 카톨릭교회에 대한 과잉반응에서 비롯된 비성서적 성례전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에 심혈을 쏟았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전혀 교회의 분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리적, 언어적, 의식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서 갈라진 동서방 교회와 이단들을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양상과 같은 정통교회들의 심각한 분열의 양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알렉산더 캠벨은 긍정적인 면에서 종교개혁가들이 추구했던 성서의 권위회복의 정신을 계승했고, "성서가 말하는 곳에서 우리도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곳에서 우리도 침묵한다"는 칼뱅의 성서중심주의를 환원운동의 정신으로 삼았다. 또 그는 종교개혁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배타주의적인 독소로 야기되는 개신교회들의 분열주의를 지양하여 교회일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인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이 교회일치 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만큼, 아들인 알렉산더 캠벨은 성서의 권위회복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토마스 캠벨이 재직하였던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편협한 당파의식과 성서해석으로 인해서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었다. 1528년 2월 29일, 패트릭 해밀톤(Patrick Hamilton)의 순교 후에 개혁교회는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560년, 요한 낙스(John Knox)가 장로교회를 설립하고, 일련의 정치적 종교적 전쟁들을 치른 후에는 장로교가 스코틀랜드의 국교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그 유명한 국민 계약에서는 교회와 국가 모두가 배타적으로 칼뱅주의를 고수할 것을 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1643년 그 계약이 정치적으로 수정 해석되었고, 그것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계약자들(Covenanters) 혹은 개혁 장로교인들(Reformed Presbyterians)이라는 이름 하에 독립된 교회와 조직체(societies)를 구성하였다. 그 후에 국가가 교회의 동의 없이 성직자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였을 때, 알렉산더 에르스킨(Alexander Erskine)과 몇몇 목회자들이 1733년 국교와 분리하여 분리 장로교회(Seceder Presbyterian Church)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 교단은 시의원들에게 요구되고, "국가 안에서 현재 인정된 종교"(the religion presently professed within the realms)를 지원토록 그들을 제한하는 서약이 자신들이 대항하는 국교 내에서 악습을 허용하는가의 문제로 1747년 갈라졌다. 서약을 받는 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반공민파"(Anti-Burghers)가 되었고, 그것을 찬성한 사람들은 "공민파"(Burghers)가 되었다. 그리고 각 교회는 서로 자기 교회가 참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1795년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23장과 본래의 국민 계약서에 주장된 시의 종교문관들(civil magistrates in religion)의 권한 문제로 "공민파"는 "옛빛 공민파"(Old Light Burghers)와 "새빛 공민파"(New Light Burghers)로 나뉘었고, 반공민파는 "옛빛 반공민파"(Old Light Anti-Burghers)와 "새빛 반공민파"(New Light Anti- Burghers)로 갈라졌다. 그리고 각 교회들은 자기 교회가 참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토마스 캠벨이 속해 있던 교회는 아이랜드의 옛빛 반공민파 분리 장로교회였다. 공민파의 서약은 순전히 스코틀랜드의 논쟁들이었으며, 아이랜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항구적으로 분리되기를 고집하였다.(3 이러한 분열현상은 미국에도 그대로 전달되었고, 토마스 캠벨이 미국에 건너와 발견한 것도 그가 북 아일랜드에 있을 때에 경험한 똑같은 문제가 미국에도 존속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캠벨 부자(父子)는 교회일치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터가 중세기 카톨릭교회로부터 탈퇴함으로서 회복하고자 했던 성서의 권위문제를 캠벨은 역으로 성서의 권위를 회복함으로서 분열된 교회의 연합을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두 개혁가들은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문제들로 개혁을 추구하고 노력했지만, 개혁되어야 할 문제점으로 침례를 중요하게 거론한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르틴 루터는 16세기 중엽 카톨릭교회의 잘못된 성례를 성서적으로 회복하는 데에 그 뜻이 있었고, 알렉산더 캠벨은 19세기 초 개신교회들의 잘못된 성례를 성서적으로 회복할 뿐만 아니라, 교회일치의 방법으로 성서적인 침례의 방법과 대상자와 그 의미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성서적 진리 속에서 일치를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이러한 정신은 루터교회가 계승했고, 캠벨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교회(Christian Church or Church of Christ)가 계승하고 있다.

알렉산더 캠벨은 침례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는 {기독교 침례인}(Christian Baptist)이란 잡지를 출간하였으며, 이 잡지에서 10년간이나 침례론을 논하였고, 여기서 논한 글들을 모아 {기독교 침례인}(Christian Baptism with Antecedent and Consequents)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는 침례에 관한 주제로 여러 번의 공개토론을 벌렸으며, 그 기록들을 모아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는 또 제 2의 잡지인 {천년왕국 예고자}(Millennial Harbinger)를 출간하였고, 이 잡지에서도 30년 이상을 침례에 관한 글을 쓰고 또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타 교단의 목회자들로부터 "물 중생론자"(Water Regenerationist)라는 불명예스런 별칭을 얻기도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교회에 특수성을 부여하고 많은 유익한 유산과 전통을 남긴 훌륭한 신학자였다.

침례의 대상(유아세례에 대한 견해)

그러나 알렉산더 캠벨은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 토마스 캠벨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고, 적어도 1812년까지는 기독교 침례인은 아니었다. 캠벨은 1808-1809학년도에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에서 수학하였는데, 그곳에서 할데니안(Haldanean)들이(4 수침 하는 것을 접할 기회를 가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례에 대한 그의 첫 반응은 1810년 11월 1일 피츠버그 장로회에 보낸 서신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유아세례가 비록 성서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할례가 초대교회 당시 관용의 문제였던 것처럼 취급되어야 하며, 결단코 무시해 버릴 문제로 고려되어서는 안된다"고 적고 있다.(5 그의 이러한 견해는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1837년에도 나타나고 있다. 캠벨은 그가 쓴 [개신 교단 속에 있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란 기사에서 약식세례가 성서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무지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대한 성실하고 정직한 충성심으로 교파교회에서 이 세례를 받고 지속적인 신앙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된다고 피력하고 있다.(6 그가 유아세례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는 다른 교단 내에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수용한 것이다.(7 그러나 그의 이러한 견해는 장로교회의 라이스(N. L. Rice) 목사에 의해서 불평으로 나타나고 있다. 1837년부터 1840년까지 계속된 루넨버그 서신 논쟁으로 비쳐 볼 때, 라이스 목사의 이 불평은 정당한 것이 못된다. 아무튼 그는 1843년 11월 24일 금요일 저녁 캠벨과의 공개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에게 매우 심하게 계속적인 압력을 가하였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들이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 즉 미수침자들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견해에 그는 그것을 그의 사견으로서 가능하다는 말을 이태릭체(Italics)로 기록하면서 매우 근접하게 끌어왔다. 그의 선심(charity)은, 그것은 처음에 다소 값비싸게 나타났지만, 단순한 가능성 정도로 위축되었다.(8

1849년 3월 캠벨은 다시 언급하기를, "나는 이 의식에도[유아세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또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9라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캠벨은 유아세례를 비성서적이며 인위적인 전통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로 믿었다.

한편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브러시 런 교회는 최초의 결신자 세 사람을(10 놓고 세례의 방법문제가 대두되었지만, {선언과 제언}(Declaration and Address)(11의 원칙에 따라 침수로 베풀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한 줌의 흙으로 시신을 매장할 수 없는 것처럼 몇 방울의 물 뿌림으로 죄인이 장사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논리로 1811년 7월 4일 버팔로 냇가(Buffalo Creek) 깊은 물에서 최초로 침수세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집례자였던 토마스 캠벨은 미침수자였기 때문에 첫 침례는 정통성의 문제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알렉산더 캠벨은 자신의 첫아들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불필요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헬라어 성경을 놓고 기도하며 깊은 연구에 몰입하였고, 유아세례가 성서적이 아닌 인위적인 전통에 의한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1812년 6월 12일 침례교 목사 마티아스 루스(Mattias Luce)에게 재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8년 후 알렉산더 캠벨은 유아세례야말로 "인위적 전통이며, 건전한 공동체에 유해하며, 종교적이요, 정치적이다"라고 1820년 6월 요한 워커(John Walker)와의 공개토론에서 주장하였다.(12

또한 캠벨은 1849년 3월 {천년왕국 예고자}지에서 침례에 대해서 134개의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그는 유아세례가 "믿음의 결핍"(13 때문에 그리고 "옳지 못하기"(14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유아세례가 왜 옳지 못한 것인가를 네 가지로 거론하였다. 첫째, 유아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 접근이다. 둘째, 유아세례는 "세상의 문들만큼이나 교회의 문들을 넓히는 것이며, 여자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교회의 품안에 수용하는 것이다."(15 셋째, 유아세례는 결신자 초대에 결정여부를 "행사할 양심의 자유"를 사람들로부터 박탈한다. 마지막으로 "유아세례는 박해정신을 획일적으로 주입하였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알렉산더 캠벨은 유아세례를 옳지 못한 인위적이며, 변질된 형태의 교회전통(16으로 보고 거절하였다. 자기 자신은 재침례를 받음으로서 자신의 받은 유아세례를 무효화시켰다. 그러나 캠벨은 구원에 관한 한 좀더 신중하게 대처했으며, 유아세례를 받은 자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즉 구원받은 자들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이들을 "경건한 미침수자들"(pious unimmersed)이라고 불렀다.(17

이러한 견해는 마르틴 루터가 언제나 침례를 선호하고 또 그것을 옳다고 보았으며, 심지어는 유아까지도 침례를 베풀었으나, 유아세례 그 자체를 강력하게 인정한 점에 비교해 볼 때 캠벨과는 의견을 달리한다. 캠벨은 유아 자신이 믿음을 가질 수 없음을 중요시하는 데에 비해서, 루터는 유아가 다른 사람들, 즉 세례를 받게 하려고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들의 신앙의 도움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중요시함으로서 카톨릭교회의 유아세례 전통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18 캠벨이 형식과 수세자의 믿음을 더 중요시한 반면, 루터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믿음보다는 침례에 나타난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있다.(19 캠벨은 교회전통보다는 성서를 우위에 두고 성서중심에서 유아세례의 부당성을 설명하였는데, 루터는 유아세례에 대한 교회전통을 그대로 인정하였으며, 자신도 유아세례를 베풀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캠벨에게 있어서 침례는 원죄를 위함이 아니고 자범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담의 원죄는 이미 제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말살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유아는 사죄함을 받아야 할 죄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유아세례는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인간 의지의 속박과 원죄를 믿었기 때문에 유아 자신의 신앙은 없다 하더라도 보호자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의지해서 유아도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을 믿었던 것이다.

{리마문서}에서는 스스로 신앙을 고백한 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신약성서에서 가장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패턴이라고 말하면서도 오리겐의 입장을 따라 유아세례가 사도시대의 전통이 였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는 반복될 수 없는 행위이다. '재세례'로서 해석되어질 수 있는 어떠한 집례도 피해야 한다"(20라고 말한다.

캠벨은 침례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성례"로 믿었다.(21 그러므로 이 성례는 "기독교인 침례(Christian Baptism)이다.(22 그리스도의 대명령은 "기독교 침례의 율법이며, 제정이며, 기원"(23이다. 캠벨은 침례를 항상 세 가지 다른 주제들로 구별하여 논하였다. 이들은 침례를 베푸는 방법(Action), 대상(Subject), 그리고 목적(Design)이다. 그는 말하기를 "대상과 방법과 목적이 존중될 때, 한 침례 안에서 일치가 가능하다"(24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캠벨은 "예수께서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고안(design)을 위하고, 어떤 행위(action)의 대상이 될 어떤 인물(character)을 명령하셨다"(25고 믿었다. 그러므로 알렉산더 캠벨은 침례에 관한 이들 세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무려 40년 이상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이 분야에 관하여 헬라어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고전 문학이나 교부들의 저술들, 종교개혁가들의 저술들, 당대의 논문들과 번역본들, 역사적 변천 과정 등 모든 가능한 연구들을 철저히 탐구하였다.

그러나 캠벨의 성서중심주의적 정신은 매우 배타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친 토마스 캠벨이 추구했던 교회연합의 측면에서는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연합의 문제는 기독교가 성취해야 할 가장 큰 이슈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방법이 포괄주의와 종교다원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배타주의는 복음의 특수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성서이해와 해석에 따라서 분열될 수밖에 없고, 종교다원주의는 복음의 특수성을 저버리고 보편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본질이 상실되고 만다. 따라서 기독교의 특수성을 살리고 보편성을 인정하는 포괄주의는 캠벨에게서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다.

침례의 방법

방법문제에 있어서 캠벨은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수에 의해서 행하여져야 한다고 믿었다.(26 오늘날 어떤 교파는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침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침례를 베풀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침례 방법에 있어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치 않고 있으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7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성서해석상에 있어서 예수의 계시가 다른 계시보다도 월등하다거나 더 큰 권위를 갖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침례를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분이 예수이시며, 친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도록 명령하신 분이 예수이시기 때문이다.(28

방법상의 또 하나의 문제는 침수이다. 침수가 성서시대에 행했던 방법이며, 언어학적인 지지를 받는다. 물론 침수 그 자체가 구원을 준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요즘같이 인스턴트 식료품과 훼스트 후드(fast foods)에 인이 박힌 세대가 진정한 의미의 침례를 경험하고 온갖 죄악으로 점철된 과거의 삶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물 속에 장사 지내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물에서 나와 새롭게 시작되는 새 삶을 경험하며,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화되는 참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는 구원의 경험으로서 갖는 평생에 한번 있는 세례는 반드시 침례를 통해야 함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구원의 시간으로서 갖는 침례의 의의는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믿음을 통해서, 선행을 위해서, 성령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중생의 새롭게 하심과 씻음에서 발견된다.

루터도 침수세례를 인정하였다. "교회의 바벨론 감금"에서 루터는 말하기를, "침례는 오히려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다. 이러므로 나는 침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물 속에 담기게 하고 싶다. 이것은 그 낱말이 나타내고 그 비밀이 표시해 주는 것과 갖다. 그 이유는 내가 이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철저하고 완전한 것에 완전하고 철저한 표징을 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29 그러나 {리마문서}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다만 세례는 공중예배 때에 베풀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고, 특히 부활절이나 오순절 또는 현현절에 행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을 뿐이다.(30

한편 캠벨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침수가 옳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침례라는 말의 어근은 bapto로서 침례나 침례 받는다라는 의미를 갖는다.(31 헬라 철학자들이나, 역사가들, 웅변가들, 또는 시인들은 물론 사전 편찬자들까지도 한결같이 이 말을 '담근다', '가라앉히다', 또는 '처넣다'라는 뜻으로 표시하고 있다.(32 또 고대의 번역서 들이나 현대의 영어 번역서들에서도 한결같이 침수의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33 "고대교회는 수침을 행하였다. 그리고 침례가 행하여진 곳은 강이나 호수나 탕과 같은 물이 많은 곳이었으며, 이것은 뿌리거나 붓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34고 말하고 있다.

침례의 목적

1822년 알렉산더 캠벨은 비로소 침례의 목적이 죄사함을 위한 것임을 확신하였다. 캠벨에게 있어서 침례는 죄를 씻기 위해서 믿음의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그는 이 점을 1823년 10월 마칼라(W. L. Maccalla)목사와의 공개토론에서 분명히 밝혔다. 그 때 그는 물은 형식적으로 죄를 씻고, 그리스도의 보혈은 실질적으로 죄를 씻는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성경에 형식적 죄사함과 실질적 죄사함에 대한 구별은 없다. 하지만 외형적 시각적 시간적 구원의 개념에서는 형식적 죄사함이 성서상으로 무리가 있을 수 없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5년 후인 1828년 그의 {기독교 침례인}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침수는 대상에 있어서 믿음의 열매"라고 하였고, 침수는 "형식적 그리고 실제적"으로 죄사함을 가져온다고 적고 있다.(35 캠벨은 5년전 공개토론에서 밝힌 그의 견해를 이곳에서 다시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개월 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수를 매체로 또 우리의 행동으로 지명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또 그것 속에서 그리스도는 실제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고 적고 있다.(36 그리고 2개월 후 캠벨은 그의 이 견해를 다음과 같은 글에서 더욱 확고히 다지고 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것이 형식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된다면, 신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그날이 바로 죄사함을 받는 날이며, 침례 안에서 그가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그는 실질적으로 형식적으로 죄사함을 받는다.(37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침례의 시간적 개념이다. 침례의 형식적 개념은 시간적 장소적 개념으로서 이해되는 한편, 침례의 실질적인 효력은 성령의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 속에서 파악된다. 1849년 캠벨의 {천년왕국 예고자}지에서도 이러한 견해는 쉽게 발견되고 있다. 캠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침례는, 그러므로, 그가 죽고, 장사되고, 부활함으로서 그리스도를 자발적으로 수용한다는 형식이요 표현이다. 이 행위에서 신자의 마음과 정신은 능동적이지만 몸은 수동적이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사적인 영광과 공식적인 충만함 속에서 그를 덧입고 수용하는 신성한 형식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침례를 복음의 실질적 수용으로서 만들고 간주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그것 위에서 과거의 모든 우리의 죄를 형식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사하신다.(38

캠벨에게 있어서 죄사함은 원죄나 미래의 죄를 위함이 아니라 침례 이전까지의 자범죄를 의미한다. 캠벨도 원죄에 대한 개념은 의식하고 있었으나 침례가 원죄로부터의 사함을 뜻한다고는 믿지 않았다.(39 그렇다면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할 만큼 성장치 못하고 죽은 유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에 캠벨은 "그들도 그리스도의 공덕과 구속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확신하였다.(40 이런 점으로 보아 그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한 행위가 첫째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보다도 더욱 은혜가 넘쳤다는 로마서 5장 12-21절의 선 은혜의 교리(Doctrine of Prevenient Grace)를 믿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선 은혜의 교리란 아담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던 지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찾았고 또 찾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즉 아담으로 인한 원죄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한 행위로 인해서 또는 넘치는 그의 은혜로 인해서 말살되며, 원죄의 결과인 사망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정복될 최후의 원수로 이미 예정되어 있음을 믿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유아세례는 불필요한 사족이 되는 것이다.

알렉산더 캠벨도 마가복음 1장 4절이나 사도행전 2장 38절과 같은 많은 구절에 나타난 "에이스 아훼신"(eis aphesin)을 영어로 해석하는 데에 논란이 있고, 해석상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에이스 아훼신"은 문법적으로 "죄사함 때문에" 또는 "죄사함의 결과로"의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이스 아훼신"을 그렇게 번역해 놓은 성경은 아직 없으며, 문맥상으로도 불가능하다. "에이스 아훼신"은 "죄사함을 위해서"로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이며 맥락적이며, 역사적이다. 캠벨도 "그것은 너의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 또는 얻을 목적으로"로 해석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41

이런 점은 마르틴 루터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침례가 죽음과 부활의 상징임을 분명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침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간주된 의(義) 혹은 칭의로서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다라고 말하였다.(42

{리마문서}도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심에 동참하는 것이며(롬 6:3-5; 골 2:12), 죄 씻음이며(고전 6:11), 거듭남이며(요 3:5), 그리스도에 의한 계몽이며(엡 5:14), 그리스도로 옷 입음이며(갈 3:27), 성령으로 새로와 짐이며(딛 3:5), 피로 받은 구원의 경험이며(벧전 3:20-21), 속박으로부터 탈출이며(고전 10:1-2), 성별, 인종, 사회적 신분의 분단의 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인간성에로의 해방(갈 3:27-28; 고전 12:13)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43 또한 침례는 정수로 몸을 씻는 사면과 모든 죄로부터 마음을 정결케 함과 칭의의 행위(히 10:22; 벧전 3:21; 행 22:16; 고전 6:11)임을 상징한다고 적고 있고, 침례를 받은 사람은 죄 용서함을 받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정결케 되며 성화 된다. 그리고 성례적 체험의 일부로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새로운 윤리적 의지를 부여받는다고 적고 있다.(44

1828년 캠벨은 기독교 침례가 구약시대의 모형으로 "정화의 씻음"에 해당한다고 확신하였고, 따라서 침수는 "중생의 씻음"이라고 증거하였다.(4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물중생론자라고 공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침례 자체가 죄를 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침례를 도덕적 정화의 상징으로 믿었고, 성령께서 사역하시는 시간적 혹은 장소적 개념으로 침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침례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와 함께 장사되며, 그와 함께 일어나고, 죄사함을 받으며, 새 생명에로 입문하며, 성령을 받으며, 주안에서 기뻐하기 시작한다"고 하였다.(46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은 "침례 안에서"(in baptism)라는 어휘이다. 이 말은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바울이 사용한 말로서 침례 가운데서 즉 침례라는 채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침례는 알렉산더 캠벨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에 주시는 구원의 축복이며, 죄사함은 물론 하나님의 가족에 입적되어 누리는 모든 축복들을 받는 즉각적인 시간이며 매개체이다."(47

그의 이러한 견해는 골로새서 2장 12절과 기타 여러 성경 구절들을(48 통해서 볼 때 성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침례식은 마치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하는 시간이나 사랑하는 남녀가 혼례식을 거행하는 시간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다. 출산의 개념은 중생의 시간으로 혼례식의 개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간으로 생각될 수 있다. 물론 새 생명이 산모의 몸에서 10여개월 성장해 온점이나 혼례 전에 남녀가 상당한 준비기간을 갖고 서로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는 때는 출산의 때요, 사랑하는 남녀가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는 시간도 혼례 때인 것처럼 성화의 차원에서 중생의 거듭남과 죄 씻음은 물론 칭의의 차원에서 의롭다 하심을 입는 공식적인 시간은 침례 때인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놀라운 역사는 물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오,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디도서 3장 5-7절과 고린도전서 6장 11절의 말씀과 에베소서 2장 8-10절의 말씀들, 그리고 로마서 3장 21절에서 5장 21절의 구원에 관한 모든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단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침례 안에서 재판장 되신 성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대속의 보혈을 친히 흘리시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선물로서 이 때에 주시고, 의사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고 부패한 상처를 싸매시는 대 수술을 감행하심으로서 옛사람을 물 속에 장사시키시고 새 생명으로 재생시키신다. 물론 이 수술작업의 근원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은총이요, 조건은 신자의 믿음이다. 침례는 단지 시간상의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틴 루터가 말했듯이 침례는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다.

알렉산더 캠벨을 물중생론자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침례를 단순히 도구적인 원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침례의 영향은 그에 의하면, "우리 자신의 행위에서 나타난 어떠한 공덕 때문이 아니오, 획득 원인으로서도 아니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옷 입음으로서 하나의 도구나 합의적 원인으로서 일 뿐이다."(49 1849년 캠벨은 그의 {천년왕국 예고자}에서 은혜의 수단들에 대해서 거론하였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은 사죄 은총의 수단이요, 침례는 단순히 사죄에 대한 확신의 수단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칭의의 수단이요, 침례의 목적은 "사죄 즉 용서의 서약,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고, 새 생명으로 일어난 부활의 확신"이다.(50 그러므로 침례는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서 나타난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 쪽에서 볼 때는 엄숙한 인침과 서약과 공식적인 확신이다.(51 캠벨은 이 점을 다음의 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효능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백된 믿음 가운데 있다. 따라서 침례를 통해서 받는 죄사함은 물이나 침수 때문이 아니라, 피침례자가 고백하고 소유한 믿음 때문이다. 침례는 그 자체가 죄사함이 아니라, 죄사함에 대한 표지요, 서약이다. 물이나 침수에 의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침례는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우리의 관심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며,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죄사함의 인침일 뿐이다.(52

이로부터 20년 전 그는 이미 믿음의 중요성과 구원의 수단 또는 매체로서의 믿음을 피력한 바 있고, "믿음은 진실로 죄사함을 구할 수 있는 근원적 매체이다"(53라고 했다. 때문에 침례는 믿음으로부터 그 모든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고, 침례는 믿음의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믿음 그 자체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떠나서는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에"(54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 믿음, 침례는 상관적이다. 그래서 캠벨은 "칭의, 성화, 양자 됨이 . . . 복음적으로 주 예수와 그의 죽으심과 연합한 침례 속에서 나타난 믿음과 연결된다"(55고했다.

마르틴 루터가 침례에 있어서 믿음을 가장 중요한 어휘로 보고 설명한 점과 캠벨의 신앙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루터도 성례가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또 그 약속을 믿는 믿음에 있으며, 그 약속을 실현시키는 성령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루터에게 있어서 구원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음은 그 약속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며 성령은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그리고 침례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출발점이다.(56

{리마문서}에서도 믿음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침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선물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응답이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는 것이다(엡 4:13). 모든 교회들은 침례 안에서 구체화되고 착수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헌신이 필요하다"(57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렉산더 캠벨도 "침례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도, 도덕적 의무도, 도덕적 의로움도 아니며, 단순히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며, 우리 자신들을 온전히 그분의 손에, 그분의 인도하심 아래 맡기는 것이다"(58고하였다. 때문에 믿음 없는 침례는 어떠한 경우라도 무가치하다. 진실로 침례는 믿음에 대한 실질적이며 상징적인 고백이다. 이는 루터가 약속과 믿음을 떠나 성례의 효력을 구하는 것은 헛된 수고라고 한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알렉산더 캠벨에게 있어서 죄사함은 침례의 결과로 따라오는 다른 모든 축복들에 대한 "주도적이며 도입적인 축복"(59이기 때문에 침례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칭의 함과 초기성화 및 양자권을 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의 부흥강사였던 월터 스코트(Walter Scott)는 이미 1817년 침례를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심지어는 영생을 얻는 장소로 설교했다. 캠벨은 이 때 이미 그의 설교를 듣고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캠벨은 {기독교인 침례}지에서 침례를 통해서 받는 모든 축복을 논하였고, 이들 축복들은 죄 용서함, 칭의, 화목, 성화, 구속, 새 생명, 성령의 내주 하심 등이다.

이러한 견해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신앙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의 임재 하심을 체험한 것이나 제 3세기 칼타고의 터툴리안이나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의 전승}에서도 나타나 있고, 이래네우스도 증언하고 있다. 성서적으로 볼 때, 사도행전 2장 38절과 고린도전서 12장 13절 등 많은 성경말씀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리마문서}에서도 이러한 교회의 전통을 받아 드려 침례 가운데서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60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혹은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다. 이 성령은 삼위 하나님의 제 3의 인격체이시다. 그리고 이 분께서 여러 가지 은사를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다.

결론적으로 알렉산더 캠벨은 하나님의 은총을 근원적이고 역동적인 원인, 그리스도의 보혈을 구원을 위한 공덕원인, 믿음을 구원을 받는 도구적 원인, 침례를 모든 영적 축복을 받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미 앞서 열거한 성구들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서가 말하는 구원의 4대 요소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례로," "선한 일을 위하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은혜를 구원의 바탕으로, 믿음을 수단으로, 침례를 시간으로,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끝 맺는 말

이것이 이제까지 살펴 본 알렉산더 캠벨의 침례론에 나타난 견해이다. 캠벨은 살아 생전에 성서의 권위와 가르침을 회복시켜 보려고 했고, 그 하나로 침례를 택하였던 것이며, 침례의 방법, 대상, 목적을 통해서, 침수를 방법으로, 회개한 신자를 대상으로, 죄사함을 목적으로 할 때, 진정한 성서적 침례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방법과 대상과 그 목적을 다르게 세례 하는 교단 신자들을 관용의 정신으로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서 극단적 구원 논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가르침에도 조금은 부족함이 없지 않다. 그의 가르침에는 성도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새로운 이해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부족함이 마르틴 루터나 {리마문서}에 의해서 보충될 수 있다고 본다.

{리마문서}에서는 예수의 침례가 죄인과의 연대감속에서 이해되고 있으며, 침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에 동참한 자들은 속박으로부터의 탈출과 성별, 인종, 사회적 신분의 분단의 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인간성에로 회복됨을 말한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 치시고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에서 미리 맛보게 하시며 그 나라를 완전하게 소유할 자로 보증하신다. 이런 뜻에서 침례는 하나님의 나라의 표지이며 침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 자는 항상 종말의 완성을 향해 갱신과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새로운 윤리적 의지(a new ethical orientation)를 부여받는다. 이 새로운 윤리적 의지는 순간적인 경험으로서 끊이지 않고 평생토록 지속되어야 할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이며 책임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한 자는 여기와 현재에 공동책임을 가지며, 인류의 해방자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함께 증거한다. 이 공동증거의 현장은 교회요 세상이다. 마지막으로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의 몸 즉 그분의 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성도 상호간의 결속과 일치를 도모한다는 새로운 이해의 차원에서 침례가 설명된다.

루터의 침례론도 이러한 맥락에서 침례에 새로운 이해의 차원을 설명해 준다. 침례는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외적 표지로서 죄악에 대항하여 부단히 싸워야 할 십자군의 입단식이 된다. 침례는 또한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義)에 대하여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침례의 의의가 이 현세적 삶 속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영적 구원의 미완성 성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일회적으로 물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신자는 육체가 무덤에 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죄와 싸워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영적으로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죄 된 인간의 본성이 육체와 함께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 죄성을 사멸시키기 위한 노력을 태만히 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침례를 받고 구원을 얻었다 할지라도 아직 완성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발전과 자기 개혁 및 성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루터는 침례를 통한 '이미' 이루어진 칭의의 문제와 '아직' 이루어져야 할 성화의 문제를 동시에 언급함으로서 시작된 종말과 미래 종말을 함께 주장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의미와 타당성을 상실한 미래종말이나 현재적 종말론을 비판하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신학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성서가 말하는 종말은 개인의 실존적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와 관련된 우주적 사건이며, 침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에 동참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미래가 앞당겨져 시작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것은 미래에 완성될 약속으로서 세계사의 목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침례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갖게 된 성도들은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고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 개인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종, 자연, 모든 영역에서 추구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이 어두운 이 세계 속에서도 완성될 그 날을 희망한다. 이 희망은 피안의 세계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이 현실 속에서 즉 이 땅위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다.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 약속에 동참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역군이며, 하나님의 세계를 지향하여 그 자신을 언제나 새롭게 변화시키고 개혁시켜 나가는 백성이다.

침례는 죄로부터의 해방이요, 죄에 대한 투쟁의 선언이다. 성서가 말하는 죄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대신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단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그분은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이것이 조건 없는 사랑의 표본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십자가의 정신이다. 우리가 침례를 통해서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신앙에 있지 아니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데 있다.  단절된 관계에서 파생되는 모든 악들 즉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빚어졌든지, 인간관계와 인간 공동체의 구조적인 악에서 빚어졌든지, 또는 자연과의 불편한 관계에서 빚어지는 생태계의 파괴에서 왔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장사 지내 버리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더불어 새롭게 부활하여 불편한 대신관계, 대인관계 및 대물관계를  십자가의 정신으로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는 일을 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침례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요, 출발점이 된다. 인간의 구원은 통전적인 관점에서 보아져야 하겠기에 침례를 영적인 구원에만 국한시켜 말할 수 없다. 성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영혼의 구원은 물론 몸의 구원과 우주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구원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루터의 침례론이 주는 교훈은 철저하고 완전한 자기반성과 회개 및 과거의 청산이다. 죄와의 부단한 자기 투쟁을 통해서 완성을 희망하며, 자기 발전과 자기 개혁과 성화를 이루어 가는 새 삶의 의지를 가르친다. 또한 침례를 통한 새 삶의 소유자는 사회의 변혁과 개혁을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희망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영적 구원에 머물지 않고, 육체의 구원과 우주의 회복을 포함한다. 침례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출발점이다. 따라서 침례는 순간적인 구원의 문제가 아니고, 영구적인 개혁과 변혁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현실이 말해주듯이 우리는 분명히 중세교회와 마찬가지로 성례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성례의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지구환경 전반에 걸쳐서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불신에 싸여 있다. 교회도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지 오래이다. 변혁을 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교회가 안일과 이기주의에서 탈피하여 새롭게 신앙을 고백할 때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 고백했던 신앙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과거를 청산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새롭게 탄생하였던 그 감격이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신앙고백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 질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통전적으로 또는 전인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사를 좀더 넓혀 이웃과의 관계에서, 정치 사회적 관계에서, 더 나아가서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성례적인 신앙고백이 있어야겠고, 우리의 책임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모두가 누룩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 인류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혁시켜 나가야 할 개혁가적 사명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분명히 중세교회와 마찬가지로 성례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성례의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와 알렉산더 캠벨이 이것을 발견하고 찾아 회복한 것처럼 우리 모두도 성례의 능력과 그 정신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하겠다.

각주

1) 알렉산더 캠벨은 그의 부친의 이상적인 교회연합이 자기 교회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인 브러시 런 교회(Brush Run Church)를 미국 펜실베니아 주 웨스트 미들타운(West Middletown)에 세웠다.
2) 동서방교회의 분열의 원인은 성령의 근원을 찾는 문제로 발전되었으며, 특별히 성령을 "아들로부터 발출(procedit)하셨으며"란 말로서 고백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따라서 589년 동방교회가 제외된 Toledo종교회의에서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filioque(=and the Son)란 단어를 첨가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1054년 동서교회가 갈라지게 되었다.
3) James DeForest Murch, Christians Onl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Co., n.d.), p. 37.
4) 로버트 할데인(Robert Haldane/1764-1842)은 스코틀랜드의 부흥목사요, 저술가요, 박애주의자였으며, 할데인 운동의 지도자였다. 그의 단체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교회의 머리로 섬겼으며, 개 교회의 정치는 다수 장로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회중주의였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배제하고 침수를 베풀었으며, 매 주일마다 성만찬을 행하였다. 이런 점은 미국의 그리스도의 교회와 거의 같다.
5) Robert Richardson, 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A View of the Origin, Progress and Principles of the Religious Reformation Which He Advocated, vol. 1 (Nashville: Gospel Advocate, 1956), p. 345. 성서시대에 할례와 무할례에 대한 논쟁도 있었고, 할례가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요구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허용되었고, 유대인들의 회당예배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이 성전예배와 같이 하나님의 지시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예수나 사도들이 회당예배에 참석하였고, 또 그것을 복음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유아세례의 경우도 할례나 회당예배와 마찬가지로 관용의 문제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Alexander Campbell, "Any Christians Among Protestant Parties,"
Millennial Harbinger (1837): 411-578; reprinted in Lunenburg Letter(Lincoln, Illinois: Lincoln Christian College, March 1970), p. 5.
7)  Lunenburg Letter, p. 9.
8) Alexander Campbell, ed., A Debate Between Rev. A. Campbell and Rev. N. L. Rice, on the Action, Subject, Design and Administrator of Christian Baptism (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Co., 1917), pp. 562-563.
9) Millennial Harbinger(1849), p. 131.
10) 결신자 세 사람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Margaret Fullerton, Abraham Altars, and Joseph Bryant.
11) {선언과 제언}은 1809년 9월 7일 토마스 캠벨이 초안하여 발표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대헌장이다. 이는 '선언,' '제언,' '부록' 그리고 '후기'의 네 부분으로 된 56쪽의 소책자이다. {선언과 제언}에서 강조된 내용은 성서의 권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 그리고 신앙양심의 자유이다. '선언'에서는 펜실베니아주 워싱톤군에 결성된 '그리스도인 협의회'의 아홉 가지 결의 내용을 적었고, '제언'에서는 분열의 무서운 결과들을 지적하면서 분열을 멈추고 일치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면서 일치를 향한 13개조의 명제를 발표하였다. '부록'에서는 '제언'에서 주장한 특정 부분을 확대 설명하였으며, 가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후기에서는 전도단 발기를 위해서 취해야 할 단계를 제안하고 있다. '제언'에 나타난 13개조의 명제(Thirteen Propositions)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핵심헌장이다.
12) Alexander Campbell, ed., Debate on Christian Baptism Between Mr. John Walker, a Minister of the Secession, and Alexander Campbell, 3rd enlarged ed. (Pittsburgh: Eichbaum and Johnston, 1822), p. 141.
13) Millennial Harbinger(March 1849), p. 129.
14) Ibid., (September 1948), pp. 481-492.
15) 서구사회에서는 오랜 기독교의 영향으로 믿지 않은 사람들도 유아를 교회에 데려가 아무 믿음 없이도 세례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세례이해는 유아세례의 성례전적 가치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한신대의 박근원 교수는 {기독교 사상} 1991년 8월호에 실린 그의 "세례와 견신례의 의식적 가치"라는 글에서 20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유아세례야 말로 서방교회 전통이 만들어 낸 최대의 과오라고 지적한 바 있고, 에밀 부르너와 위르겐 몰트만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또 그는 유아세례 제도야 말로 서방 기독교가 몰락하는 주요 원인이며, 누수의 진원일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런 서구교회의 모순이 그대로 우리 한국교회에도 전수되어 있기 때문에 서구 교회의 누수현상의 전철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16)유아세례가 시작된 A.D. 200년경 이전까지는 성서나 초대교회가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없다. 물론 A.D. 200년 이후의 교부들 가운데 오리겐이나 키프리안 같은 감독은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있고, 특히 오리겐은 유아세례의 기원을 사도들의 전통에 두고 있지만 사실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모든 사례는 피침례자가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한 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2:37-38; 8:6-12, 35-38; 9:4-18; 10:33-48; 16:13-15, 32-33; 18:8; 19:1-5).
17) Alexander Campbell, "Any Christian Among Protestant Parties," Millennial Harbinger (1837), pp. 411-578. "Editorial," Christian Standard
(Cincinnati: Standard Publishing Co., August 8, 1985), p. 3.
18) {루터 선집 제 7권: 은혜의 해설자 루터}, pp. 186-187.
19) {루터 선집 제 7권: 은혜의 해설자 루터}, pp. 186-187; John Dillenberger, ed.,
Martin Luther: Selections from His Writings(Garden City, NY: Anchor Book Doubleday & Company, Inc., 1961), pp. 228-233.
20) World Council of Churches,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Faith and Order Paper No. 111(WCC, Geneva, 1982), 13항.
21) Millennial Harbinger(November 1849), p. 601.
22) Alexander Campbell, Christian Baptism with its Antecedent and Consequents(Nashville: Gospel Advocate, 1951), p. 172.
23) Christian Baptism, p. 173.
24) Christian Baptism, p. 188.
25) Alexander Campbell, The Christian System
(Nashville: Gospel Advocate, 1974), p. 39.
26) Christian Baptism, p. 85.
27) 사도행전 2:38; 8:16; 10:48; 19:5; 22:16을 참고.
28) 초대교회 당시에는 무릎을 끓고 물에 앉으면 물을 붓는다든지, 침례 탕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앞으로 세 번씩 몸을 굽혀 물에 담갔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번, 아들의 이름으로 한번, 성령의 이름으로 한번씩 도합 세 번씩 침수를 했던 것이다. 지금도 희랍 정교회에서는 물 속에 세 번 들어갔다 나온다. 요한의 침례가 예수의 이름을 포함하지 않고 베풀어진 침례라고 한다면, 예수의 이름을 강조함으로서 이 침례가 그리스도인의 침례임을 강조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는 예수의 명령대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 더욱 성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29) {루터 선집 제 7권: 은혜의 해설자 루터}, pp. 181.
30)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23항.
31)
Christian Baptism, p. 85.
32) Christian Baptism, p. 90.
33) Christian Baptism, p. 101, 105.
34) Christian System, p. 41. 북아프리카 칼타고의 키프리안 감독은 A.D. 250년경에, 그가 비록 약식세례를 인정하긴 하였지만, 침수로 하지 않은 세례를 최초로 약식이라고 칭하였고, 약식세례를 받은 사람이 합법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될 수 있을는지의 의문을 배제하지 못하였다. 3세기 초 칼타고의 터툴리안이나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들의 전승}에 나타난 침례의식을 보더라도, 피침례자가 벌거벗고 세 번씩 물 속에 몸을 담갔고, A.D. 9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도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침례를 하라고 권하였고, 침수할 물이 없을 경우에만 세 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피침례자의 머리 위에 물을 붓도록 권하였다.
35) Alexander Campbell, Christian Baptist(1828): reprint ed., (Nashville: Gospel Advocate, 1955), p. 128.
36) Christian Baptist(April 1828), p. 222.
37) Christian Baptist(June 1828), p. 256.
38) Millennial Harbinger(1849), p. 611.
39) Christian Baptism, p. 202.
40) Millennial Harbinger(1849), p. 130.
41) Christian Baptism, p. 199. 일부 침례교 학자들이 "에이스 아훼신"을 "~때문에" 혹은 "~ 결과로" 해석하기를 고집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조동호, {성령세례에 대한 성서적 이해}(한성신학교, 1988), pp. 71-78을 참고 바람.
42) {루터 선집 제 7권: 은혜의 해설자 루터}, pp. 35-38.
43)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 3항.
44)
Ibid., 4항.
45) Christian Baptist(July 1828), p. 129.
46) Christian Baptist(April 1828), p. 222.
47) Christian Baptist(July 1828), pp. 254-255.
48) 막 16:16; 행 2:38; 22:16; 롬 6:1이하; 갈 3:27; 벧전 3:21.
49) Christian Baptism, p. 205.
50) Millennial Harbinger(1849)
, p. 62.
51)
Christian Baptism, p. 205.
52) Millennial Harbinger(November 1849)
, p. 611.
53)
Christian Baptist(June 1828), p. 255.
54)
Christian Baptism, p. 221.
55) Christian Baptism, p. 229.
56) John Dillenberger, P. 230; {루터 선집 제 7 권: 은혜의 해설자 루터} pp. 181-183.
57)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 8항.
58)
Christian Baptism, p. 229.
59) Christian Baptism, p. 205.
60)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 5항.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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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성령세례에 대한 성서적 이해}. 한성신학교, 1988.
지원용 편. {루터 선집 제 7권: 은혜의 해설자 루터}. 서울: 컨콜디아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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