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과 적용에 관한 고찰
A Study on the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and Application of Alexander Campbell

    조동호 목사


들어가는 말

종교개혁이후 개혁가들은 한결같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들을 하였다. 16세기 개혁가들의 이런 주장은 성경이외의 변질된 교회전통이나 교황의 권위를 중시하는 카톨릭교회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21세기를 시작하는 오늘에 있어서는 개신교의 심각한 분열에서 그 당위성이 확보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의 분열은 줄지 않고 있고, 성경해석의 격차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개신교회들이 이미 단단하게 굳어버린 자기 교단의 오랜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과 성경해석의 원칙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점에도 기인한다.

성경해석의 원칙이 통일되지 못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성경만을 우리의 믿음과 실천의 규범으로 삼을 것인가, 성경뿐 아니라, 삶의 정황과 인간의 이성까지도 포함시킬 것인가; 둘째, 신구약 성경전체를 규범으로 삼을 것인가, 신약성경만 규범으로 삼을 것인가; 셋째,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 사항들을 자유로 볼 것인가, 금지로 볼 것인가; 넷째, 특정 사항을 본질로 볼 것인가, 비본질로 볼 것인가가 그것들이다. 이밖에도 특정 성구나 어휘의 뜻풀이 그리고 신학방법론에도 문제는 있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서 성경해석과 적용원칙의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도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 시대의 신학계를 이끌고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신학자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 그리고 그의 해석학 원리들이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그가 남긴 글들을 통해서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고찰하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이 글에서는 '성서'를 '성경'으로, '세례'를 '침례'로 통일하였다. '성서'와 '세례'보다는 '성경'과 '침례'가 성경의 권위회복과 사도들의 오랜 전통인 침수세례를 회복시키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알렉산더 캠벨의 신앙과 신학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1. 알렉산더 캠벨

알렉산더 캠벨(1788-1866)은 19세기 초 미국에서 사도들의 전통에로 돌아가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할 것과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본래의 이름아래 모든 교회들이 하나로 통합할 것을 외쳤던 개혁가였다. 그러나 캠벨은 대학에 들어가야 할 바로 그 나이에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하였기 때문에 정식 대학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 1808-09학년도에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 학기동안 공부한 것이 그가 받은 정식 대학교육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대한 종교지도자 즉 설교가, 신학자, 토론가, 편집인, 출판인, 교육가, 성공적인 사업가, 그리고 개혁가가 되는데 필요한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토마스 캠벨이 수년간 알렉산더 캠벨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토마스 캠벨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목회자였다. 그는 1451년에 세워진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Glasgow)대학교에서 3년간 신학교육을 받았고, 반공민파 분리주의 장로교 소속인 휘트번(Witburn)신학대학원에서 일년에 8주씩 5년간 목회자 수업을 받았다.[William Herbert Hanna, Biography of Thomas Campbell Advocate of Christian Union, reprinted and distributed by College Press Publishing Co. Inc. in Joplin Missouri, pp. 25-26.] 이 때문에 토마스 캠벨은 신학과목은 물론이고, 교양과목까지도 알렉산더 캠벨을 가르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교사였다. 아버지의 지도아래 알렉산더 캠벨은 영어, 라틴어, 헬라어뿐 아니라, 죤 로크의 철학과 같은 교양과목들을 공부하였다[Robert Richardson, 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A View of the Origin, Progress and Principles of the Religious Reformation Which He Advocated, vol. 1(Nashville: Gospel Advocate, 1956), pp. 33-34.]. 이뿐 아니라, 알렉산더 캠벨은 그의 부모로부터 대단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적어도 하루 한 소절의 성구를 암기하여 저녁 가족예배 때에 암송하였으며, 주일 저녁 예배 때에는 일곱 절 모두를 암송하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었다[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vol.1, pp. 35-36]. 이 점에 대해서 앨저 몰톤 핏치는 "알렉산더 캠벨의 고백에 따르면, 가정에서 이루어진 이 신앙교육이 그를 만들어낸 주된 요인이 되었다."고 썼다[Alger Morton Fitch, Jr., Alexander Campell: Preacher of Reform and Reformer of Preaching(Austin, Texas: Sweet Publishing, 1970), p, 84.].

글라스고 대학교에서 알렉산더 캠벨은 존 영(John Young)으로부터 헬라어, 문법, 그리고 웅변술을 공부하였고, 조지 잘딘(George Jardine)으로부터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우레(Ure) 박사로부터 실험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또 제임스 비티(James Beattie), 토마스 라이드(Thomas Reid), 등 다른 교수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글라스고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알렉산더 캠벨은 저녁 10시에 자고 아침 4시에 일어나 공부하였다. 사실 이것은 그의 일상적인 생활습관이었다[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vol.1, pp. 130-131]. 미국으로 이주한 다음부터는 아침 3시에 일어나 아침예배 때가지 글을 쓰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였다. 이 시간에 쓰여진 글만으로도 인쇄공이 하루 온종일을 바쁘게 움직여야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vol. 2, p. 300].

알렉산더 캠벨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토마스 캠벨은 그에게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도록 권하면서 적어도 6개월 동안은 성경을 강도 높게 연구하라고 일렀다. 따라서 알렉산더 캠벨은 1810년 겨울수업 시간표를 다음과 같이 짰다.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헬라어 읽기.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한 시간 동안 라틴어 읽기.
오후 12-1시 사이에 한 시간 반 동안 히브리어.
하루 두 시간 동안 성경말씀 10절 암기하기, 같은 구절을 원어로 읽기, 헨리(Henry)와 스코트(Scott) 주석 보기 및 말씀대로 행하기.
이것들을 반드시 지키되 빼먹는 일이 없도록 할 것.
그밖에 읽기와 연구들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행하되, 4시간 반을 채우며, 교회사를 비롯해서 다양한 다른 학업도 나의 다른 문학(교양) 탐구의 중요부분에 포함되도록 한다[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vol. 1, pp. 278-279].

그 때 이후로 알렉산더 캠벨은 죽을 때까지 성경연구를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고, 결국에는 위대한 교회 개혁가가 되었던 것이다.

알렉산더 캠벨은 월간지 {크리스천 뱁티스트}(The Christian Baptist)를 1823년 7월 4일 창간하여 7년간 출판하였고, 1830년에는 {밀렌니얼 하빈저}(The Millennial Harbinger)를 창간하였는데, 그가 죽은 1866년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죽기 일년 전까지 이 월간지의 편집자로 일하였다[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vol. 2, p. 655]. {크리스천 뱁티스트}에서는 논쟁에 치중한 반면, {밀렌니얼 하빈저}에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알렉산더 캠벨은 구독자를 위해서 일년에 한 차례씩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룬 특별부록을 만들었는데, 1835년에 이것들을 모아 엮어낸 책이 바로 {크리스천 시스템}(The Christian System)이다. 따라서 이 책은 알렉산더 캠벨의 신학사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알렉산더 캠벨은 모두 다섯 번의 토론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세 차례의 토론이 침례에 관한 것이었다. 이들 토론의 내용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겨져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존 워커(John Walker)와의 토론을 담은 책은 출판되자마자 4천부나 팔렸고, 라이스(N. L. Rice)와의 토론을 담은 책은 부피가 상당했다. 또 알렉산더는 그의 월간지에 실었던 침례에 관한 글들을 따로 모아 {크리스천 뱁티즘, 그 전례와 결과}(Christian Baptism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토론내용을 실은 또 다른 책들로는 1829년에 나온 {기독교 변증}(The Evidences of Christianity)과 1837년에 나온 천주교 교리(Roman Catholicism)에 관한 것이 있다. {기독교 변증}에는 알렉산더가 협동조합과 무신론으로 유명한 영국인 로버트 오웬(Rober Owen)과 벌린 토론을 담았고, 천주교 교리에 관한 책에는 오하이오주 신시나티시의 천주교 주교, 존 퍼셀(John B. Purcell)과 벌린 토론을 담았다.

알렉산더 캠벨은 또한 헬라어 원본에서 영어로 번역한 새 번역, {신약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성경}(The Sacred Writings of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of Jesus Christ, the New Testament)의 머리말과 부록을 맡아 썼고, 수정 작업에도 관여하였다. 이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알렉산더 캠벨은 1818년 30세 때에 목회자 육성을 위해서 자신의 집에서 버팔로 신학교(Buffalo Seminary)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4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그 후 18년만인 1840년에 베다니 대학을 세웠다. 그리고 그 해 9월 18일 알렉산더는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4학년 학생들의 필수과목으로 아침 6시에 시작되는 성경강좌를 개설하였다. 그는 또 지성 철학, 기독교 변증, 도덕 과학, 정치경제, 교회사 등을 가르쳤다. 이 가운데 특히 교회사는 학생들이 앞다투어 수강하기를 원했던 인기과목 중의 하나였다. 리차드슨(Richardson)는 "그의 품위 있고, 친절하며, 정중한 태도와 교수들의 성실한 협력은 학생들에게 인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였다[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vol. 2, pp. 485-486].

2.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관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관과 성경해석원칙들은 그가 펴낸 {크리스천 시스템}(Christian System) "제2장 성경"에 일곱 가지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일곱 가지 가운데 앞의 셋은 성경관에 관한 것이고, 뒤의 넷은 성경해석원칙들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모두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은 다음 장에서 소개될 것이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앞부분에 실린 캠벨의 성경관에 관한 것만 소개한다.

알렉산더 캠벨은 성경을 인간과 관련된 그것도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의 책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첫째로 "성경은 인간의 영적이고 영원한 관계에서 인간을 우선적으로 깊이 다룬다."고 하였고, 둘째로 "성경은 인간의 지적 도덕적 세계에서 빛과 생명, 영적이고 영원한 것들의 원천이다."고 하였으며, 셋째로 성경은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글이다."고 하였다. 이는 캠벨이 성경을 모든 학문과 모든 분야에 걸친 모든 문제들을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영적인 문제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룬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 자신이 학문적이었고 이성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시사한다.

캠벨은 그의 성경관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1. 한 분 하나님, 한 도덕체계, 한 권 성경. 만약 자연이 한 체계(조직)라면, 종교 또한 그렇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체계의 하나님이란 말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높은 지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연과 종교는 한 분 아버지의 형상 곧 동일한 신성의 혈통을 받은 쌍둥이 자매이다. 물질 세계의 체계만큼 분명한 체계를 가진 지적이고 도덕적인 세계가 있다. 인간은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인간은 동물이자, 지적이며 도덕적인 존재이다. 감성은 자연에서 인간의 안내자이며, 믿음은 종교에서, 이성은 자연과 종교 모두에서 인간의 안내자이다. 성경은 인간의 영적이고 영원한 관계에서 인간을 우선적으로 깊이 다룬다. 성경은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보여줘야 할 만큼 자연의 역사이다. 성경은 인간의 몸과 혼과 영혼에 관련해서만 자연 곧 우주를 깊이 다루기 때문이다.

2. 마치 태양계에서 태양이 위성들에게 그런 것처럼 성경은 인간의 지적 도덕적 세계에서 빛과 생명, 영적이고 영원한 것들의 원천이다. 전 인류에게 있어 성경에서 기인되지 아니한 영적 개념은 없다. 신학자가 유일무이한 최고의 책인 성경을 떠나서 인간에게서 영적 개념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철학자가 자연에서 독자적인 광선 하나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오래 걸릴 것이다.

3. 성경 혹은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쓰여진 신구약 책은 실존상태 그대로 인간에게 채택된 충만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담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인간의 현재(현존)와 의무 그리고 그것에 관한 중요하고 적절한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룬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인간의 과거에 관한 글이 아니며, 미래에 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인간의 현재에 관한 글이며, 의무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신체적으로, 천문학적으로, 지질학적으로, 정치적으로 혹은 형이상학적으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글이다.[Alexander Campbell, The Christian System in Reference to the Union of Christians, and a Restoration of Primitive Christianity, as Plead in the Current Reformation(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Publishing Co., 1989), pp. 2-3.]

알렉산더 캠벨에게 있어서 계시와 영감은 초자연적이고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성령의 영감에 따라 말하였는데, 그들은 이런 특별한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깨닫게 되었다. 이들 계시와 영감이외에도 성령의 초자연적인 도움들이 있었는데, 이들 도움들은 그들의 정신작용을 예리하게 하고, 선점된 생각들을 제거하여주며,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미 스쳐갔던 생각들, 보고 들었던 것들까지도 기억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도움들이 지혜와 지식의 영이신 성령의 감독아래 놓여있어서 그들이 기록한 사건의 문제들에 있어서 오류의 가능성을 제거시켜주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요 16:13),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겠다(요 14:26)고 한 약속은 영감으로부터 감독에까지 포함되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알렉산더 캠벨은 사도들이 "오류의 가능성 없이 기독교의 전통들을 세울 수 있는 충분하고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Alexander Campbell, Christian Baptism with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Nashville: Gospel Advocate, 1951), p. 27.]고 믿었다.

이상의 캠벨의 성경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의 성경의 성격을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성경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 인간의 글로 쓰여진 인간의 글임이 틀림없다. 캠벨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해오셨다. 그렇다면, 성경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이다."[Christian Baptism, p. 29.]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쓴 사람들의 믿음이자 확신이었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주장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서 지난 수 천년에 걸쳐 나타난 엄청난 영적인 변화들에서 입증되고 있다.

성경은 자연과학에 관한 글도 아니고, 역사를 남기기 위한 글도 아니다. 성경은 영성이 뛰어난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 신앙공동체가 처한 정황[주: 여기서 정황이란 신앙공동체의 고난, 박해로 인한 배교와 이단의 위협, 정체성 확립, 성장에 따른 신앙교육, 질서확립 등을 말한다.]에 대응한 글들로써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압축된 역사일 뿐 아니라, 선별된 자료들의 편집이자 설교요, 믿음의 글이자 해석이다.   

그러나 그들의 글이 결코 그들 자신만의 글이 아닌 것은 그들이 자기 신앙공동체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의 풍부한 영성과 소명의식과 역사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 또는 영감을 통해서 파악하거나 믿음의 전통들을 재해석하여 선포하였으며, 이를 문서로 전달할 경우에는 독자들의 이해와 기억을 쉽게 하기 위해서 수집한 자료의 선별이용과 용의주도한 편집해석으로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의 영감은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이며, 영이신 하나님께서 인간(하나님의 종들)과 인간의 도구들을 통해서 육체들인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전달한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66권의 책이 정경으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또한 성경은 기록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천년에 걸쳐서 독자들에게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근본목적에 충실하였고, 오류가 없었던 하나님의 말씀임이 입증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록 우리는 이들 저자들이 설교와 저술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설교방식을 사용한 자들이고, 그들 자신의 어휘들을 선별한 자들로 간주해야 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받은 영감이 완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의 마음과 일치되지 아니하는 부적절한 말이나 어휘를 선택할 수 없었다.[Alexander Campbell, ed., Millennial Harbinger(May 1834), reprint(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n.d.), p. 200.]

200년 전 알렉산더 캠벨이 가졌던 성경관이 오늘날의 성경관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아니한 것은 표현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언정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시와 영감으로 된 책이며, 인간과 그의 영혼의 문제를 다룬 책이란 점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해석방법론일 것이다. 성경해석방법론이 잘못되면 성경관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경관이 잘못되면 성경해석방법론이 잘못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교회분열과 성경해석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들이 심사숙고해야 할 내용들이어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3.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은 그가 펴낸 {크리스천 시스템}(Christian System) "제2장 성경" 후반부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동일한 내용이 {밀렌니얼 하빈저(1846)}(The Millennial Harbinger)와 {크리스천 뱁티즘}(The Christian Baptism)에서도 발견된다. 앞부분 1-3번(성경관)에 이어서 나머지 부분을 모두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4. 성경의 어휘들은 그 안에 모든 생각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 어휘들은 올바르게 이해되어지고, 그 안에 든 생각들도 명백하게 인지되어진다. 성경의 어휘들과 문장들은 다른 고대 문서들이 번역되어지고 이해되어진 동일한 해석법과 원리들에 따라서 번역되어져야하고, 해석되어져야 하며, 이해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어로 인간에게 말씀하셨을 때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처럼 즉 말의 올바르고, 규칙적이고, 잘 성립된 의미들을 가지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의 일종으로써 언어의 특성에 본질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계시일리가 없고, 또 인류에게 그것의 참 뜻을 풀어주고 해석해줄 특정계급을 언제나 요구하게 될 것이다.

5. 우리는 해석의 원리들과 법칙들에 관해서 자주 그리고 크게 언급하여왔다. 그것들은 신비적이고 우화적인 해석경향이 남아있는 이 시대에 본질적인 중요성과 유용성을 갖는 것들이다. 우리는 여기에 선임자들의 글들에서 뽑아낸 필수적인 해석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강도 있고 잘 요약된 전제들에서 얻어낸 것들이며, 과거와 현재의 세기들을 통틀어 유력한 번역가들과 가장 뛰어난 비평가들과 주석가들이 완벽하게 지켜왔던 것들이다.

6. 원칙1: 성경의 어느 곳을 펼치든지 제일 먼저 책의 역사적 정황들을 고려하라. 이들 정황들이란 배열순서, 책의 제목, 저자, 기록연대, 기록장소, 기록동기를 말한다.

역사적인 구성물에 있어서, 예를 들면, 모세오경이나 다른 여러 권으로 된 이야기들, 심지어 서신들과 통신문들의 첫 번째,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와 같은 배열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제목 역시 중요하다. 제목은 때때로 책의 기록목적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의미하는 출애굽기나 사도행전 등이 그렇다.

저자의 특이성, 그가 살았던 시대, 그의 스타일, 표현방법은 그의 저술을 설명한다. 기록연대, 기록장소, 기록동기는 책에서 어떤 내용을 올바로 적용하는데 있어서 분명히 필요하다.

원칙2: 어떤 책의 내용들, 예를 들면, 관련사항들, 인식의 결과들, 약속들, 권면들과 같은 내용들을 검토함에 있어서, 그것이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어떤 신의(神意)를 따라 저자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가를 관찰하라. 저자는 족장인가, 유대인인가 혹은 그리스도인인가? 대상자들의 선입관, 특성, 종교관계 등도 고려하라. 그들이 유대인들인가 혹은 그리스도인들인가, 신자들인가 혹은 비신자들인가, 인정받은 자들인가 혹은 비난받은 자들인가? 이 원칙은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명령, 약속, 경고, 훈계, 혹은 권면을 적절하게 적용하는데 필수적이다.

원칙3: 명령된 것, 약속된 것, 교육된 것 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언어학의 원리들, 언어의 본성에서 연역된 것, 다른 책들의 언어에 적용된 동일한 해석법이 성경언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원칙4. 증거로만 확인될 수 있는 공통사용은 한 가지 의미만을 갖는 어휘의 뜻을 항상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휘들이 증거(사전)에 따라 한 가지 이상의 뜻을 가질 때, 문자적인지 혹은 상징적인지, 그 범위, 배경 혹은 평행구들은, 만일에 공통사용, 저자의 목적, 배경, 그리고 평행구들이 결정하지 못한다면, 언어해석에 있어서 확실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뜻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칙5: 모든 수사적 언어에서 유사점을 확인하고, 유사점으로부터 문채의 본질과 종류를 판단하라.

원칙6: 설명되어진 요점을 확인하라. 왜냐하면, 비교는 그 요점이상으로 결코 확대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징들, 유형들, 은유들과 비유들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 원칙이 상징, 유형, 은유 혹은 비유의 모든 속성들, 특성들, 혹은 상황들에 우선한다.

원칙7: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하고 성화시키는 지력(智力) 때문에 다음의 원칙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는 거리 혹은 듣는 거리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 거리가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도 있고, 귀가들을 수 없는 거리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면 소리가 충분히 전달되는 원안으로 다가서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에 이해할 수 있는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벗어나는 모든 곳에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 거리 안에 있는 모든 곳에서는 경건과 도덕에 관한 제반 문제들에 있어서 쉽게 그분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은 그 원의 중심이며, 겸손은 그 원의 둘레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눈에 낮의 빛을 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혹은 도덕적 시력에 의의 태양의 빛을 채택함에 있어서도 분명하다. 빛은 우리 자신들의 노력 없이도 우리에게 다다른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만일 우리의 눈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자연의 빛을 즐길 수 있다. 물질의 빛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에서도 건강한 눈이 있다. 해석의 언어학 원리들과 법칙들이, 어휘들이 뜻하는 바들을 인식도 경탄해마지도 않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비평과 어휘와 문장의 해석에 능하게 하는 한편, 건강한 눈은 사물 그 자체들을 깊이 관찰하며, 성경이 펼치는 도덕적 장면들에 몹시 기뻐한다.

시력의 맥락에서 도덕적 건강은 하나님 자신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인정과 흐뭇해하시는 사랑에만 고정된 이해의 눈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한 가지만 최고로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때때로 외눈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한 가지 목표와 한 가지 열렬한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책을 펼치는 모든 사람 ,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일에만 뜻을 가진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은 쉽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와 같은 오로지 그와 같은, 즉 하늘과 신성한 것들에 관한 이로운 지식을 비취도록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겸손 혹은 효과면에서 동일한 것 그리고 탁월한 모든 세상 것의 경멸은 이 빛을 수용토록 마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은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 육과 세상과 사단으로부터 오는 모든 논쟁의 소음 속에서 인간은 귀가 심하게 먹어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자만과 탐욕과 헛된 욕망을 멀리하고, 세상사랑을 멈추고, 그 원, 진실한 겸손의 원안에로 들어오고, 하나님 자신의 중심에로 들어오면,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하게 들리고, 명백하게 이해되어진다. 이 원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것들이고, 원밖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사악한 자의 영향아래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주: 베드로전서 5장 5절].

하나님의 말씀들을 해석하여 자기 영혼의 구원에 이를 자는 아이의 겸손과 온순함으로 이 말씀에 접근해야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해야한다.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발 밑에 앉아야 하며,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에 경청해야 한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해의 확신과 지식의 확실성이 있다. 그것은 학식만을 가진 자가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비평가에 불과한 자가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7. 성경은 사실의 책이지, 견해나 이론이나 추상적 보편성의 책이 아니며, 말뿐인 결론의 책도 아니다. 그것은 대단한 사실들의 책이며, 필설로 다할 수 없이 거대하고 숭고한 책이다. 이들 사실들은 하나님과 인간을 드러내며, 그것들 안에 모든 경건과 의로움의 근거들 혹은 소위 종교와 도덕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포함한다. 성경 사실들의 의미는 진실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역사는, 그러므로, 신구약 모두에서 추구되는 계획이다. 왜냐하면, 증언은 우선적으로 믿음을 필요로 하고, 추론은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는 그것들에서 발생한다. 때문에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기대 혹은 흔히 역사와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게 영감으로 된 모든 성경책의 5분의 4를 채운다.[The Christian System, pp. 3-6; See also the Christian Baptism, pp. 25-35; The Millennial Harbinger, 1846 p. 13 following.]

이밖에도 알렉산더 캠벨은 자신의 기독잡지, {크리스천 뱁티즘}이나 {밀렌니얼 하빈저} 등에서 성경해석의 원리들을 설명해왔다. 여기서는 중요한 내용들만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캠벨은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해오셨다. 그렇다면, 성경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이다." "그 책의 어휘들은 평범한 언어사용으로 이해될만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성경어휘들의 참된 의미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Christian Baptism, p. 29.] 성경말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전들과 문법책들과 주석서들이 필요하다.[Millennial Harbinger(February 1832), p. 106.] 다른 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성경말씀에도 동일한 해석원리들을 적용할 수 있다.[Millennial Harbinger(March 1832), p. 64.]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해야 한다[Millennial Harbinger(February 1832), p. 107.] 라고 했다.
또 캠벨은 성경에 있는 모든 어휘들은 뜻이나 의미와 같은 개념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한다. 그렇다면 의미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관습적인 것이다. 의미는 어휘들과 그것들의 뜻 사이에서 일종의 연결성을 갖고 있는 합의와 관용법과 관습이다.[Christian Baptism, p. 30.] 초자연적 개념들의 영감은 어떤 경우에도 설교가나 저자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Millennial Harbinger(1834), p. 271.] 성경말씀의 저자들은 "각자 자신의 독특한 관용어법, 사고추론의 방법, 다른 주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주제에 관한 자기 자신의 표현법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개념들이 성령에 의해서 제안되었을 때, 어휘들의 선택이나 자기 자신의 표현방법은 영감을 받은 사람의 몫이었다. 따라서 저자 자신의 이름의 구별만큼이나 우리는 관용어법이나 독특한 표현법들에 의해서 구별되는 저자 자신들을 만나게 된다."[Millennial Harbinger(May 1834), p. 200.]고 하였다.

그리고 저자들의 독특성은 두 가지 면, 즉 국가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하였다. 따라서 성경해석자는 이 부분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하늘 아래 모든 나라의 저자들은 우리가 주목해야할 적어도 두 가지의 독특성을 갖는다. 그들은 인간으로써 자기 자신들에게 속하는 한 가지 독특성을 갖는다. 그것은 얼굴이나 목소리의 톤이나 걸음걸이나 개인의 다른 어떤 개성적 인격의 차이에서 구별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눈으로 식별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국가, 언어, 시대, 혹은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든지에 속하는 한 가지 독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마태와 요한은 유대인들이었다. 이들 두 저자들은, 정도가 심한 피상적 관찰자에게조차도, 그들의 서로 다른 개인적 독특성들은 쉽게 구별이 되며, 그들 또한 모두 그들이 서로 다른 개인적 독특성들에 의해서 쉽게 구별되는 것만큼 국가적인 독특성들에 의해서 동시대의 헬라인과 로마인 저자들과 쉽게 구별이 된다.[Millennial Harbinger(1834), pp. 270-271.]

이밖에도 어휘의 문자적, 문채적 혹은 비유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해석자는 확신을 가지고 의미를 결정하기 전에 어휘의 뜻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Christian Baptism, p. 32.]고 하였다.

이로서 우리는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을 살펴보았다. 캠벨은 하나님의 계시조차도 인간의 언어와 이해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신비적이고 우화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책을 해석할 때는 책의 저자, 기록연대, 장소, 동기, 목적, 수신자, 저자의 특이성, 스타일, 표현방법 등의 역사적인 정황을 고려해야한다고 했다. 이는 발생된 사건이 필연적인가 우연적인가, 기록된 내용이 문자적인가 상징적인가, 어휘와 문장의 뜻은 무엇인가를 사건 발생시의 정황과 그 사건을 기록한 저자시대의 정황과 수신자의 정황을 고려해야 하며, 그 말씀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의 거리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에 있다고 하였다. 올바른 성경해석 즉 하나님의 뜻의 접근과 이해는 학식가나 비평가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고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겸손한 신앙인에게 가능하다고 하였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겸손한 신앙심은 이성이나 지식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알렉산더 캠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와 성경해석의 최종권위로 인정하였다. 그는 예수를 참 메시아로 믿는 믿음과 예수를 왕과 입법자로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됨의 유일한 시금석(ONLY TEST)이 되며, 인간의 모든 신조와 견해와 계명과 전통들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의 연합(혹은 일치)과 교제와 협력 여부의 유일한 결속(ONLY BOND)이 된다고 믿었다.[Alexander Campbell, The Christian System(Nashville: Gospel Advocate, 1974), xii.] 그는 {크리스천 시스템}(The Christian System)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셨고, 인간들의 주와 천사들의 주로써 왕관을 쓰셨다. 그리고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 또는 주권을 "내게 주셨다."고 하였다. 그는 이제 하늘 군대와 천군 천사들의 주요, 그 모든 것들을 받으셨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아마 우리의 상태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서 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가 선지가가 되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제사장이 되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를 위해서 만군의 주, 만유의 왕, 만물의 재판장과 보복자가 되셨다. 그는 생명의 주요, 영혼의 주요, 모든 것의 주이시다.[Christian System, p. 36.]

한편, 알렉산더 캠벨은 한 역사적 사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깨닫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이 성경에 나오는 목격자들의 증언들에 근거해서 입증될 수 있다면, 예수가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성경의 신뢰성과 진실성이 분명해 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총체적 기독교 종교는 한가지 사실 위에 기초한다." 캠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사실은 역사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이렇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사도였는가? 이 물음은 여러 다른 형태로 바뀌어 질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진실한가? 예수는 실제로 또는 문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되어진 후에 죽음에서 부활하였는가?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보는 자리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는가? 그는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재판관으로 지명되었는가? 그는 사람들을 속이는 자요, 기만하는 자였는가? 등의 물음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한가지이다. 많은 물음들을 던질 수 있지만 결국은 한가지로 귀착된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사도이며, 인간들의 구세주인가? 이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이 주어질 때에 우리의 의무, 우리의 구원, 그리고 우리의 행복이 확인되어지고 결정되어진다.[Alexander Campbell, "Hints to Reader," The Sacred Writings of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of Jesus Christ, The New Testament. trans. George Campbell, James Macknight and Philip Doddridge(Hollywood 4: Old Paths Book Club, 1951), p. xx.]

캠벨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복음서의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힌트를 제시하였다.

1. 이들 사복음서 저자들은 어느 누구도 다른 것들보다 더 낫게 쓰려고 하거나, 그들이 단순하게 기술한 것들을 자세하게 쓰려고 하거나 그들이 쓴 글들의 결점들을 보완하고자 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지 않았다.

2. 이들 사복음서 저자들은 어느 누구도 그들이 아는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예수에 관해서 기록했을 내용만 기록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그들의 기록목적이 아니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요한복음 21장을 보라.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수반된 증거와 권위에 관한 정당한 사례를 진실로 제공하였다.

3. 이들 역사가들은 그들이 인용한 내용들을 언제나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구세주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말이나 글로 쓰여진 것들의 완전하고 자세한 의미에서만은 예외이다.

4. 구세주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에 종종 동일한 격언들과 비유들 그리고 담화들을 말씀하셨고, 그분이 행한 이적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록 시간이나 장소들이 먼 곳에서 베풀어졌을지라도, 많은 경우 동일한 상황을 수반하였다.

5. 이들 역사들의 담화순서는 유대인들과 다른 고대 역사들의 것과 비슷하며, 역사 기록들의 현대적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Hints to Reader," pp. xxi-xxiii.]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한 가지 참된 사실을 믿는 것은 성경 해석자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해석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며, 성경을 해석하기에 앞서 거듭난 사람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의 어느 부분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먼저 구원을 받아야 성경 말씀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알렉산더 캠벨은 "인간은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먼저 영적 측면에서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Millennial harbinger(March 1832), p. 108.]고 하였다.

4.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의 적용

알렉산더 캠벨의 근본철학은 믿음과 실천의 규범이 되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권위아래서 평화와 사랑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하며,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최대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 토마스 캠벨이 교회연합을 위해 설정한 특별한 원칙들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이들 원칙들은,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믿음과 실천의 규범으로 삼아야할 본질의 문제와 신앙양심에 따른 견해의 차이를 용인해도 좋을 비 본질의 문제와 화평와 사랑으로 처신해야 할 모든 일에서 연합하여야 한다. 둘째,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을 침묵한다. 셋째, 성경해석의 결과가 친교의 시금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위적인 신조와 전통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캠벨에게 있어서 본질의 문제에서의 연합(혹은 일치)은 성경해석에 근거한 본질에서의 연합이나 모든 점에 관한 모든 성경의 가르침에서의 연합을 의미하지 아니한다. 성경의 가르침들 가운데 상당수가 해석의 차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14장 1절에 관한 캠벨의 해석을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 즉 성경해석에 부족함이 있는 자라할지라도 용납해야할 뿐 아니라, 의심스럽고 논쟁의 소지가 있는 문제 즉 상반된 견해를 가질 수 있는 문제로 친교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캠벨은 자신의 신학적 결론을 연합의 근거 즉 정통과 이단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는 믿음과 회개와 침례를 기독교본질의 문제로 생각해서 연합의 근거 즉 친교의 시금석으로 삼았지만, 믿음의 특성에 관한 자신의 해석, 회심 중에 성령께서 작용하시는 방법,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발견되는 침례의 설계는 캠벨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자기 신학의 일부분이었지, 그것들을 친교의 시금석으로 세우지 않았다.

알렉산더 캠벨은 비판자들로부터 "물 중생론자"(Water Regenerationist)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침례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신학자였다. 그는 월간지 {크리스천 뱁티스트}(The Christian Baptist)를 1823년 7월 4일 창간하여 7년간 출판하였고, 여기서 논한 글들을 모아 {크리스천 뱁티즘, 그 전례와 결과}(Christian Baptism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를 내놓았다. 그는 또 침례를 주제로 여러 번의 공개토론을 벌렸으며, 그 기록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였다. 1830년에는 제2의 잡지 {밀렌니얼 하빈저}(Millennial Harbinger)를 시작하였고, 이 잡지에서도 30년 이상을 침례에 관한 글을 쓰고 주장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캠벨이 자신의 성경해석원칙들을 어떻게 이 분야에 적용했는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라 생각된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유아세례문제와 약식세례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유아세례와 관련해서 알렉산더 캠벨은 매우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유아세례에 관한 캠벨의 첫 반응은 그가 이 문제로 1810년 11월 1일 피츠버그 장로회에 보낸 답변에서 나타났다. 여기서 캠벨은, 비록 성경이 유아세례를 허용한 것은 아닐지라도, "유아세례는 관용의 문제이어야 한다. 초대교회 안에 할례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결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무관심의 문제) 여기지 않았던 것과 같다."[Memoirs, vol. 1, p. 345. "it should be a matter of forbearance as it is evident circumcision was in the primitive church, by no means considering it a matter of indifference."

주: 성경시대에 할례와 무할례에 대한 논쟁도 있었고, 할례가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요구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허용되었고, 유대인들의 회당예배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이 성전예배와 같이 하나님의 지시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예수나 사도들이 회당예배에 참석하였고, 또 그것을 복음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유아세례의 경우도 할례나 회당예배와 마찬가지로 관용의 문제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 유아세례는 구원을 위한 혹은 구원에 대한 증거로써의 세례이기보다는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한 세례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유아세례에 아무런 특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과 동일한 교회회원의 자격이 주어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만이 참여할 수 있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없으며,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주어지지 아니한다. 유아세례의 효력은 보통 12-15세 사이에 이루어지는 견진례 혹은 입교예배에 의해서 비로소 발생되기 때문이다.]고 했다.

알렉산더 캠벨은 유아세례가 비 사도적 전통(unauthorized)이고, 비 성경적이며, 자기중심적 분파주의에 기초한 옳지 못한 인위적 전통임을 확신하면서도 유아세례의 효능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비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기를 원하였던 것이며,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는 다른 교단 내에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수용하였다.[Lunenburg Letter, p. 9.]

1810년 유아세례문제를 처음 다룬 캠벨은 40년이 지난 다음에도 변함 없는 동일한 견해를 견지했다. 1849년 3월에도 캠벨은 "나는 이 의식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또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The Millennial Harbinger(1849), p. 131. "I make no doubt but there were and there are Christians in this practice."]고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캠벨은 1820년 6월 요한 워커(John Walker)와의 공개토론에서 유아세례야말로 "인위적 전통이며, 건전한 공동체에 유해하며, 종교적이요, 정치적이다."[Alexander Campbell, ed., Debate on Christian Baptism Between Mr. John Walker, a Minister of the Secession, and Alexander Campbell, 3rd enlarged ed. (Pittsburgh: Eichbaum and Johnston, 1822), p. 141.]고 하였고, 1849년 3월 {밀렌니얼 하빈저}에서는 유아세례가 "믿음의 결핍"[Millennial Harbinger(March 1849), p. 129.] 때문에 그리고 "옳지 못하기"[Millennial Harbinger(September 1948), pp. 481-492.]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 여기서 유아세례가 왜 옳지 못한가를 네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 유아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 접근이다. 둘째, 유아세례는 "세상의 문들만큼이나 교회의 문들을 넓히는 것이며, 여자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교회의 품안에 수용하는 것이다."[주: 서구사회에서는 오랜 기독교의 영향으로 믿지 않은 사람들도 유아를 교회에 데려가 아무 믿음 없이도 세례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세례이해는 유아세례의 성례전적 가치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한신대의 박근원 교수는 {기독교 사상} 1991년 8월호에 실린 그의 "세례와 견신례의 의식적 가치"라는 글에서 20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유아세례야 말로 서방교회 전통이 만들어 낸 최대의 과오라고 지적한 바 있고, 에밀 부르너와 위르겐 몰트만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또 그는 유아세례 제도야 말로 서방 기독교가 몰락하는 주요 원인이며, 누수의 진원일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런 서구교회의 모순이 그대로 우리 한국교회에도 전수되어 있기 때문에 서구 교회의 누수현상의 전철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셋째, 유아세례는 결신자 초대에 결정여부를 "행사할 양심의 자유"를 사람들로부터 박탈한다. 마지막으로 "유아세례는 박해정신을 획일적으로 주입하였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알렉산더 캠벨은 유아세례를 옳지 못한 인위적이며, 변질된 형태의 교회전통[주: 유아세례가 시작된 A.D. 200년경 이전까지는 성경이나 초대교회가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없다. 물론 A.D. 200년 이후의 교부들 가운데 오리겐이나 키프리안 같은 감독은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있고, 특히 오리겐은 유아세례의 기원을 사도들의 전통에 두고 있지만 사실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모든 사례는 피침례자가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한 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2:37-38; 8:6-12, 35-38; 9:4-18; 10:33-48; 16:13-15, 32-33; 18:8; 19:1-5).]으로 보고 거절하였고, 자기 자신은 재침례를 받음으로서 자신이 받은 유아세례를 무효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 캠벨은 구원에 관한 한 신중하게 대처했으며, 유아세례를 받은 자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 즉 구원받은 자들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캠벨이 성경해석원칙들을 적용한 자신의 해석의 결과를 통해서 유아세례가 비 사도적이고 비 성경적이라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유아세례자에게 구원이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약식세례와 관련해서도 알렉산더 캠벨은 매우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 증거는 1837년 6월호 {밀렌니얼 하빈저}에 알렉산더 캠벨이 [영국에 보내는 서신들](Letters to England-No.1)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모든 개신교 교파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발견된다."고 쓴 글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이 표현에 대해서 루넨버그의 한 자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침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대해서 알렉산더 캠벨은 교파교단의 기독교인들을 "경건한 미침수자들"[Alexander Campbell, "Any Christian Among Protestant Parties," Millennial Harbinger(1837), pp. 411-578; "Editorial," The Christian Standard(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August 18, 1985), p. 3.]이라고 칭하는 한편, 개신교 교단에도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캠벨은 침수세례를 받은 자와 무지한 상태에서 약식세례를 받은 자와의 차이를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자와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신체의 일부가 불구인 자로 비교하였다. 다음의 글은 캠벨의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 신앙 고백에 따라 받는 침수를, 그것이 비록 성화와 안위에 대단히 본질적일지라도,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인 본질로 만들 이유(occasion)는 없다. 나의 오른쪽 손과 오른쪽 눈은 나의 소용과  행복에 대단히 본질적이다. 그러나 나의 생명에는 그렇지 않다. 그것들 없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침수의 진실되고 성경적인 의미와 목적대로 바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수용함이 없이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침수세례자 이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없다고 추측하는 사람은 분명하고 온전한 시력을 가진 자 이외에는 산 사람이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만큼이나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Any Christian Among Protestant Parties," p. 3.]

캠벨의 이러한 입장은 교회에 상당한 논쟁의 불씨를 제공하였고, 온 교회가 달아올랐다. 캠벨 자신도 이 문제에 상당히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교계로부터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가 캠벨주의자(Campbellite) 또는 물중생론자(Water Regenerationist)로 매도되었기 때문이다. 캠벨의 다음과 같은 불평은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주 열렬한 이들 형제들이, 신앙을 고백하는 대중의 모든 사적이고 사회적인 덕행들을 얕보면서, 우리가 침례를 구세주로 만든다 든지 혹은 천국 가는 여권으로 만들고 있다는 교계의 비난에 빌미를 제공하였다.["Any Christian Among Protestant Parties," p. 10.]

캠벨은 침례박사라 불러도 좋을 만큼 침례에 대해서 평생동안 연구하고 토론하고 발표한 신학자였지만, 또 침수세례를 사도적이고 성경적이라고 믿었지만, 또 교회내의 일부세력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내린 성경해석의 결론들을 가지고 약식세례자에게 구원이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캠벨의 이런 객관적이고 신념에 찬 의지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만이 그리스도인들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인들 뿐이다."(We are not the only Christians, but Christians only.)"는 연합적 사고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이 주는 교훈

알렉산더 캠벨의 성경해석원칙들은 새천년을 시작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 교훈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알렉산더 캠벨은 1830년대의 큰 흐름 즉 천주교의 카톨릭주의와 개신교의 분파주의, 자연신론과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사도들의 전통이 담긴 성경에로 돌아가려는 독자적인 원칙을 고수하였다는 점이다.
1830년만하더라도 성경의 권위가 서서히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던 때이다.

18세기경에 시작된 영국의 자연신론과 독일의 계몽주의는 사람들에게 신앙보다는 이성을, 성경보다는 과학을 중시하는 합리주의를 강조하였고, 계시와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부정하도록 가르쳤으며, 자연신론은 하나님 없는 역사를, 계몽주의는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으니, 홀로서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19세기에는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에 바탕을 둔 다윈의 진화론이 하나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주장하였다.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위한 폭력과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시켰고,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이며, 숙명론적이고 인과론적인 동물로 추락시키면서 무신론을 정당화하였다. 이 시대에 포이에르바하, 칼 마르크스, 로버트 오웬과 같은 무신론자들이 등장하였고 성경비평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때에 캠벨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에로 돌아가려는 원칙을 굳게 고수하였다.

둘째, 알렉산더 캠벨은 1830년대에 이미 현대의 성경해석학이 주장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고루 강조하였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념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뿐 아니라,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과 정황파악의 중요성 및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였다. 캠벨은 해석자에게 믿음뿐 아니라 주관적인 믿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성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벨은 자신의 이성을 비평가들처럼 성경을 부정하는 곳에 사용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세우는 일에만 사용하였다. 그가 성경해석에 있어서 마음의 겸손을 중요시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캠벨은 하나님의 뜻의 접근과 이해는 학식가나 비평가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고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겸손한 신앙인에게 가능하다고 하였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겸손한 신앙심은 이성이나 지식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셋째, 캠벨은 어떤 경우에도 성경은 신학과 실천의 규범이어야 하나 구원에 본질적인 부분에서만 일치를 주장하였다. 나머지 비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신앙양심에 따른 견해의 차이를 용납하였으며, 모든 일에는 화평와 사랑으로 처신하는 연합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넷째, 성경이 하라한 것과 하지 말라한 것을 구별하여 반드시 지키고, 성경이 따로 명하거나 금하지 아니한 것은 신앙양심에 맡기도록 하였다.

다섯째, 캠벨에게 있어서 성경해석학 원리들은 신학적 결론을 끄집어내어 친교의 시금석 또는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울타리로 삼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여섯째, 캠벨에게 있어서 성경적 본질에서의 연합(혹은 일치)은 성경해석에 근거한 본질에서의 연합이나 모든 점에 관한 모든 성경의 가르침에서의 연합을 의미하지 아니한다. 성경의 가르침들 가운데 상당수가 해석의 차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캠벨에게 있어서 의심스럽고 논쟁의 소지가 있는 문제는 친교의 시금석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캠벨은 자신의 신학적 결론을 연합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는 믿음과 회개와 침례를 기독교의 본질들이라고 생각해서 연합의 근거에 포함시켰지만, 믿음의 특성에 관한 자신의 해석, 회심 중에 성령께서 작용하시는 방법,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발견되는 침례의 설계는 캠벨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신학의 일부분이었지, 그것들을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친교의 시금석으로 세우지 않았다.

여덟째, 캠벨에게 있어서 성경은 믿음과 실천의 유일한 규범이며 성경해석의 최종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과 예수를 왕과 입법자로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됨의 유일한 시금석이 되며, 인간의 모든 신조와 견해와 계명과 전통들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의 연합(혹은 일치)과 교제와 협력 여부의 유일한 결속이 된다고 믿었다.

아홉째,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한 가지 참된 사실을 믿는 것은 성경 해석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해석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며, 성경을 해석하기에 앞서 거듭난 사람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의 어느 부분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먼저 구원을 받아야 성경 말씀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나오는 말

짧은 글이지만 이 글을 통해서 19세기 초부터 중반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그리스도의 교회 설립자 알렉산더 캠벨 목사와 그의 성경관, 그의 성경해석원칙들, 그의 성경해석원칙들의 적용, 그리고 그의 성경해석원칙들이 주는 교훈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가 남긴 저술들은 대단히 많지만, 본 글에서는 한정된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보다 깊이 있는 연구에 한계가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소개된 알렉산더 캠벨 목사의 성경해석원칙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바로 읽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참고서적

"Editorial." The Christian Standard. 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August 18, 1985.
Campbell, Alexander. "Any Christians Among Protestant Parties."
Millennial Harbinger(1837): 411-578. Reprinted in Lunenburg Letter. Lincoln, Illinois: Lincoln Christian College, March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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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George Campbell, James Macknight and Philip Doddridge. Hollywood 4: Old Paths Book Club,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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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Baptism with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 Nashville: Gospel Advocate, 1951.
--------------------------------. Ed. Debate on Christian Baptism Between Mr. John Walker, a Minister of the Secession, and Alexander Campbell. 3rd enlarged ed. Pittsburgh: Eichbaum and Johnston,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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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hristian System. Nashville: Gospel Advocate, 1974.
--------------------------------. Ed. Millennial Harbinger(May 1834). Reprint.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n.d.
Fitch, Alger Morton Jr. Alexander Campbell: Preacher of Reform and Reformer of Preaching. Austin, Texas: Sweet Publishing, 1970.
Hanna, William Herbert. Biography of Thomas Campbell Advocate of Christian Union. Reprinted and distributed by College Press Publishing Co. Inc. in Joplin Missouri.
Richardson, Robert. Memoirs of Alexander Campbell: A View of the Origin, Progress and Principles of the Religious Reformation Which He Advocated. Vol. 1. Nashville: Gospel Advocate,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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