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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의 필요성
개신교에서 행하고 있는 두가지 성례중의 하나인 성만찬 떡의 재료는 무엇을
사용하여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것은 성례를 준비하고 집례하는데 필요한 연구 분야이다.
근래의 개신교는 성만찬 떡을 사용함에 있어 성서적 근거도 없이 자의대로
필요따라 다양하게 준비되어 성례전 예식에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 혹자들은 성만찬에서
어떤 떡을 사용하든지 재료는 상관이 없고 그 의미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러나 기독교의 초대 교회로 부터 유래된 전통과 계승되는 예배의식과 형식을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만찬에서 성서적으로 어떤 떡이 사용되었으며 어떻게
전승되었는가를 연구하여야 할 필요성을 가진다.
많은 교회가 특별한 검증없이 성만찬 재료로서 카스테라와
포도주를 사용하고 있고 또 성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는 대신 신앙의 토착화를
위하여 우리나라의 제례음식인 시루떡과 막걸리를 사용하여도 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을
내 놓기도 한다.(1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서적 근거를 토대로 하고 있는 합리적이고
전통적인 순수한 성례전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구약에 근거한 소제물인 레위기 떡과 유월절
무교병과 유대인들의 식사 관습에 대하여 고찰하고 신약에서 성만찬은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연구와 사용하는 떡재료에 대한 성서적 견해를 살피고, 초대교회를
거쳐 중세와 현대에 이르는 교회사에서 성만찬떡 재료 사용에 대한 역사적 변천을
고찰한다.
오늘날의 교회가 각 교단별, 교회별로 임의대로 성만찬에
필요한 떡재료를 사용하고 있고 특히 성만찬떡 재료 사용으로 교회의 분열이라는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성만찬떡 재료에 관한 연구는 올바른
성례를 집례하는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만찬떡은 레위기
소제물로 사용한 떡을 전승한 것인가? 아니면 유월절 무교병을 전승한 것인가? 이
모든 의식과 차이가 있다면 최후의 만찬의 떡은 예수 그리스도가 특별히 제정하신
신약교회의 고유의 것이며 이것을 오늘날의 교회가 전승한 것인가? 하는 식별은 성만찬떡
재료를 채택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2). 연구의 목적
현대교회가 요구하는 예배갱신은 바른 성만찬의 집례를 포함하고 있는데 성서적
근거가 희박한 떡재료를 선정하여 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떡을 준비하는 예배위원들
간에 재료로 인한 갈등을 초래한다. 교회가 성서적인 정확성에 대한 확신도 없이
성만찬떡 재료를 사용하여 문제를 야기시킨다든지 실천신학분야에서 연구를 방치하여
교회나 목회자가 자의적 해석으로 떡을 사용하여 혼란과 교파적 분열을 가중 시키고
있다.(2
종교개혁후 1529년 10월초 마르부르크(Marburg)회담은
종교개혁의 막후 공헌자 헤스의 필립(Philip of Hess)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연방체제
확립을 위하여 소집하였는데 독일 계통의 대표로는 루터와 멜랑히톤이 참석했고 스위스
계통에서는 즈빙글리와 외콜람 파디우스(Oecolam Padius)등 개혁파의 중요한 신학자
60여명이 모였다.
필립공의 요청으로 루터가 준비한 15개항을 토의했는데
그중에 14개항은 토의 끝에 합의를 이루었으나 마지막 난제인 성만찬 문제에서는
"그리스도가 성만찬에 어떻게 임하는가?" 하는 문제로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실재적으로 성만찬에 임재하신다"고 주장했으며 즈빙글리파에서는
"성만찬은 살과 피의 신비한 상징이며 이것은 계속적인 기념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일치점을 찾지 못했고 1536년 비덴베르크 콘코드(Wittenberg
Concord)에서 재차 만났으나 실패하고 무산되어 교파 난립의 원인이 되는 중요 쟁점이었다.
이와같이 성만찬은 교회의 중요 관심사이며 특히 그 재료에 있어서도 쟁점의 초점이
된다.
일반적으로 '떡'이라는 말은 빵의 한국 말의 번역인데
본 논문에서는 '떡'으로 통일했는데 그 어원은 '에워싸다' 혹은 '맷돌로 간다'는
말에 근거하며, 이 말은 '전쟁' '파괴'의 전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될 때도 있다.
또 스바냐 1장13절에 의하면 '전쟁에서 얻은 고기같은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아람민족과
같은 유목민족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떡'은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로
깨물어 상처를 낸다'는 뜻이 있는데 민수기 14장 9절에 의하면 '적을 무찔러 이스라엘의
밥(떡)이 되게 하리라'는 말이 있다. 또한 '고난을 오래 참다가 먹을 것을 얻게 된다'는
뜻도 있다. 특히 우갈(Ugaritic)의 예배의식에서는 그들의 신 모토(Mot)에 의하여
죽임,고문,투옥,박멸을 당할때 쓰는 말이다.(3 이와같이 '떡' 자체가 나타내고 있는
의미는 다양한데 성만찬에서 어떤 떡재료를 사용하여 성만찬을 집례하느냐 하는 것은
떡 자체가 지닌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3). 연구의 문제와 제한점
예레미야스(J.Jeremias)는 [예수의 성만찬 언어]에서 예수의 최후만찬 기원설은
유월절식사, 키두쉬, 챠브라, 에세네중에서 어느것인가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4
챠브라 기원설에 대한 견해는 고에츠(K.G.Goetz), 오토(R.Otto), 딕슨(G.Dix), 리츠만(H.Lietzmann)등이
주장하는 것으로(5 종교적 의식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유대적 식사인 챠브라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스는 성만찬 식사로 입증될 수 없으며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성만찬의 기원으로는 부적격하다고 했다.
쿠훈(K.G.Kuhn)은 에세네파식사 의식이 두가지 면에서
성만찬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는데(6 그것은 첫째 초기 그리스도인의 식사 형태와
같고 둘째 누가를 제외한 복음서 기자들의 최후만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 식사는
쿰란에서 수도사들이 열한시와 오후 늦게 매일 두번씩 함께 모여 가진 에세네파의
식사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떡과 포도주의 축복과 함께 한 식사와 유사하다고 하면서도
그 순서의 차이를 시인한다.
예레미야스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식사의식이 축복의 순서에서 뿐만 아니라
의식 전체의 진행절차에 있어서 에세네파의 식사와 다르며(7 최후의 만찬은 에세네파의
식사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와 함께 매일 식탁의 교제를 계속하였던 것을
기원하므로 에세네파의 식사가 성만찬에 영향을 미쳤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키두쉬(Kiddush)라고 불리우는 식사는 유대인들의 랍비가
안식일이나 특별한 명절을 준비하기 위한 식사 관습으로 최후의 만찬의 뜻을 '키두쉬의
최후'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8 그러나 맥스웰(W.D.Maxwell)은 "유월절은
가족적 축제였으나 키두쉬는 남자들 만의 모임이고 유월절에서는 어린양을 잡았으나
최후의 만찬에는 양이 없었다.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떡을 사용하였으나 키두쉬는
누룩있는 떡을 사용했다. 유월절에는 여러개의 컵을 사용했으나 키두쉬에서는 단
하나의 컵을 사용했다. 유월절에서는 출애급 말씀이 있었으나 키두쉬에는 출애급
말씀이 언급되지 않았다"(9 라고 했다.
최후의 만찬이 키두쉬에 근거했다는 하나의 증거로 요한복음
18장 28절에 보면 유월절이 아닌 유월절 먹기 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인 점에서 최후의 만찬은 다락방에서 마지막 날 밤에 떡과 잔을 나눈
것뿐이지 유월절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 최후의 만찬은 키두쉬였다는
것이다.(10 그러나 성만찬 기원은 형식적으로는 키두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의미상으로 볼때 키두쉬로 단정하기 어렵다. 유월절 식사라고 하는 주장은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하루전에 행하여 졌으나 예루살렘성의 큰 다락방(눅22:12,13)에서
행하여 졌고, 분명히 그것은 정규 유월절 만찬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다락방의
만찬이 유월절 만찬의 모든 양식을 갖추고 있다고 공관복음서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결국 형식은 키두쉬에 가깝고 의미상으로는 유월절에 가까운 창조적 결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전적으로 기독교적 발전이라는 주장이다.(11
유대적 배경과 전역사가 무엇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의 성만찬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12 그렇다면 성만찬은 그
재료에 있어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의한 배경을 강조한다. 그리고 초기와 중세교회에
전승된 성만찬의 떡재료를 연구하여 재료의 통일성과 일치점을 연구 목적으로 한다.
1). 구약에 나타난 떡의 재료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린 제사 음식으로 소제물에 대하여 레위기 2장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찌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 가져다가 제사장에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찌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찌며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레2:4-13)
상기의 말씀은 기름이 부어진 밀가루의 봉헌물에 소금을
친 것을 소제물로 드리고 있다. 후에 신약에 와서 eucharistia는 전통적 용어지만,
그 용어속에 새로운 실제를 삽입한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제사적 행위, 연회, 식물성
봉헌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인 것이다.(13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행한 근거로서 추상하는
유월절의 구약성서 기록은 출애급기 12장 1-20절과 신명기 16장 1-8절을 말하는데
유월절(Pesah)은 '고르지 못하다' '위로 뛰어넘다' '목숨을 부지하게 하다'라는 의미인데,
해가 떨어질때 거행되었으며 이 식사의 음식은 굽는 방식으로 사막에서 유목민들에게
적합하다. azymes(누룩없는 떡)이라는 떡은 잘 보관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운 나라의
전통적인 양식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무리의 양떼를 지키는 자들에게
적합하고 허리띠를 매고 서 있는 자세는 즉시 출발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유월절 축제에는 azymes(누룩없는 떡)을 먹었는데 유목민의
의식으로 보리 추수때 사람들은 옛날에 추수했던 것들은 모조리 없애 버리고 누룩이
없는 새로운 낟알을 가지고 만든 떡을 먹곤 했다.
(1). 떡에 나타난 특징
구약의 떡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떡재료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가). 떡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무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하늘로부터 떡(만나)을 내려 주셨는데(출16:4,
느9:15) 이것은 여호와가 주신 떡이다(출16:15).
(나). 유월절에 먹는 누룩없는 떡은 애급에서 해방이 되어 나온 역사를 회상하게
한다. 이 떡을 '고난의 떡'이라고 부른다(신16:3). 이 고난의 떡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의 노예였던 사실과 여호와께서 구출해 줬음을 회상하게 하며 유월절 모든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세상에 있어서는 나그네요 순례자임을 선포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시39:13,
대상29:15). 누룩을 넣어 만든 떡은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창설'한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때로는 누룩은 부패의 상징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다). 떡은 희생제물의 요소가 있다. 그래서 제사상을 차려놓은 상을 '희생의
상'이라 하였다(겔41:22).
(라). 떡을 나누어 먹는 일은 단지 자선을 베푸는 것뿐만 아니라 떡을 가져오는
사람과 평화를 맺는다는 뜻도 있다(창14:18, 삿8:5,6,15). 아론시대에 누룩없는 떡은
아론과 그 후손에게 맡겼다(출29:23,24).
(2). 떡만들기
가. 성분
구약성서에 나타난 떡은 보통 밀가루나 보릿가루로 만들었는데, 밀가루가 보릿가루보다
더 비쌋기 때문에 부자들만 밀가루로 만든 떡을 먹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보릿가루
떡을 먹었다(삿7:13,왕하4:42). 그리고 곤궁한 때는 떡의 양을 늘리기 위하여 가루에
다른 곡식을 섞기도 했다. 에스겔은 유배의 상징으로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겔4:9)로 떡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14
나. 반죽의 준비
반죽은 밀가루 또는 보릿가루를 물과 섞어 만드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유목생활을
하던 시대에는 떡을 반죽하기 전에 누룩을 섞지 않았으며 현대에 와서도 대부분의
베두인족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고 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전날에
조그만 반죽덩어리를 마련했다가 물에 넣어 섞은 후에 가루를 섞어 반죽을 하는것이
관례가 되었는데 그후에 발효가 되어 충분히 부풀어 오를때 까지 기다렸다(마13:33,
눅13:21).(15
다. 떡을 굽는법
성서에 나타난 떡을 굽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평평하고 큼지막한 돌 위에 불을 피워 그 돌이 달구어지면 재를 모두 치우고 뜨거운
돌바닥에 반죽을 늘어놓은 다음 그 위를 재로 완전히 덮는 방법이다. 물론 떡을 뒤집을
때는 재를 제거해야 한다. 이 방법은 엘리야가 "숯불에 구운 떡"(왕상19:6)을
먹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좀 더 발전한 방법으로는 번철(마하밧(mahabat))에다 굽는
방법이 있으며(레2:5,6:21. 대상23:29) 또한 남비(마르헤셋(marheset))에 구울 수도
있다(레2:7, 7:9). 우묵한 구덩이에 불을 피워 번철위에 반죽을 올려 놓아 떡을 구웠는데
이것을 하비팀(habitim,진설하는 떡, 대상9:31)라고 했다.(16
그러나 떡굽는 방법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역시 화덕에
굽는 방법이다. 오늘날도 아랍 지역에서는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라. 여러가지의 떡 모양
대부분 떡의 모양은 접시 모양이었는데 지름이 45cm정도 된다. 떡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우가(uga)는 '둥굴게 되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비롯된다. 기드온의 한 병사는
'보리로 만든 떡 한덩어리'(삿7:13)가 미디안진으로 굴러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또한 고리모양의 떡도 있었다. 떡을 나타내는 다른 히브리어로는 할라(halla)라는
뜻이 있는데 그것은 '구멍을 내다'라는 말인데 이러한 떡은 굽기전에 또는 구운후에
구멍을 뚫어 만들었다. 그리고 심장 모양의 떡도 있으며 떡을 죽 늘어 놓는 전설병의
배열은 오늘날의 떡 모양도 볼 수 있다. 게셀에서는 길고 두껍게 구워낸 떡조각도
발견되고 직업적으로 떡굽는 자가 만들어낸 여러가지의 떡 모양도 있는데 에집트의
파피루스는 30여가지의 떡 모양을 언급하고 있다.(17
(3). 떡의 용도
떡은 일상 식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음식이며 성전에 바치는 음식으로
사용했다.
가. 일상 생활에서의 떡
일상생활에서 떡은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으며 하나님이
심판하는 날에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이러한 수단을 빼앗아 버린다(레26:26, 시105:16,
겔4:16). 특히 떡은 손님에게는 선물로 언급되어 있는데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람을 맞으러 나온 기록이 있고(창14:18) 또한 떡은 병사들의 주식이고(삼상16:20)
곡식을 거두는 사람에게도 주식이었다(룻2:14). 떡은 식사 중에 숟가락으로도 사용했다.
이와같이 떡 그 자체가 음식이었을 뿐 아니라 음식을 먹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했다.
나. 소제물로서의 떡
구약에서 떡은 소제물로서 사용했을 뿐 아니라 고대 근동지방에서도 의식용
제물로서 널리 사용했으며 바벨론과 메소보다미아 지방의 의식에서도 매우 흔히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제사 풍속에도 떡의 사용이 보편적이었으며 관혼상제에 사용되고 있었다.
라스 샤므라(Ras Shamra)에서는 엘(EL)신과 바알신에게 포도주, 꿀, 새끼양, 새들과
함께 떡도 예물로 바쳐졌다.
히브리인들은 제단에 곡물의 고운 가루를 드렸으나
또한 여러가지 모양의 떡도 바쳐졌다. 그것은 모두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효병' 이거나 '기름을 바른 무효전병(무효전병,레2:4)이어야 했으며, 또한 번철이나
남비에 구워낸 것이어야 했다(레2:5,7). 유의해야 할 것은 발효시켜서는 절대 안되며
소금으로 간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레2:11,13). 소제물의 일부는 제단에서 태워졌으며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을 위해 남겨졌다.
2) 신약에 나타난 떡의 재료
사람이 하나님께 요구하는 조건으로서 일용할 양식(떡)을 구하였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떡은 상징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떡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만 백성의 떡이 되시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구약의 만나와 비교하여 떡은 참 하늘의 양식이다.
만나는 구약에서 하늘의 떡이라 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였다. 이 만나는
예수의 참 떡의 예표이다.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도 참 생명이 되는 참 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누구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이 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 양식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은 그 생명을 그대로 주실것이다(요6:57).
이것은 성만찬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요6:53-56).
떡은 생명의 표징으로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떡은
육체의 고난의 표이며 긍휼의 표이다. 이것을 나누어 먹는 것은 화목의 표가 되며
한 식탁에 앉아서 같이 먹는 것으로 서로 화해의 표가 되는 것이다.
성만찬의 성서상의 명칭으로서 고린도전서 11:20 "주의
만찬"으로, 그리고 사도행전 2:42, 20:7에 "떡을뗀다"로, 고린도전서
10:16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으로, 고린도전서 10:21에는 "주의
상"으로 되어 있는데 '주의 만찬'이 신약에서 성서적 명칭으로 적합하다. 떡은
무효병(무효병) 즉, 누룩없는 떡이다(마26:17-26, 고전5:7). 이는 성만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유월절의 공물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출12:3-10). 그리고 잔은 포도즙으로
발효하지 않은 것이다.(18
초기의 성만찬(Eucharist)의 의식인 주의 만찬(Lord's
Supper) 의식 중에 '떡을 떼는' 일이 행해 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떡을 뗀다'는
귀절은 예배를 나타내고 있다(행2:42,46. 20:7). 신약성서에서 다른 부분은 떡은
닥아올 하나님 나라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 때를 은유적으로 사용했다. 그리스도와
만찬을 함께한 제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눅14:15)라고
메시야의 잔치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의 떡을 먹고 그 잔을
마실때 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이다(고전11:26). 그리스도는
자신을 가르쳐 '참떡'이라고 했다. 제자들이 '만나'에 대해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신
떡'이라고 하자 예수님은 그 자신이 바로 '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신 참떡'이라고 했다. 이때 제자들은 항시 떡이 내려지기를 요청했다(요6:31-34).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그가 '생명의 떡'이며 그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히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말한다(요6:35).
다락방에서의 만찬은 유월절 만찬의 모든 양식을 갖추고
있다고 공관복음서는 증거하고 있다. 신약학계의 권위자인 예레미야스는 복음서의
기록들 속에서 그 만찬의 유월절 배경을 말하면서 재료에 대하여 떡을 떼기전에 어떤
음식이 먼저 나왔고 유월절의 독특한 특징인 붉은 포도주를 마셨으며 '적신 떡 조각'의
사용(요13:26절 이하)은 그 만찬의 특징에 대한 증거의 하나라고 말했다. 적신 떡
조각은 애급의 혹독함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된 소스에 찍은 떡 조각으로 하는
연례적인 잔치라는 것이다(막14:20).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유월절에는 적신
떡이 사용된 반면 마가복음 14장 22절에는 '보통 떡'으로 언급되어(19 최후의 만찬
재료와 유월절 의식 재료가 불일치한다. 그리고 마가복음 14장 22-25절에는 유월절
예식에 관하여 특히 유월절 양과 쓴 나물에 관하여도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최후의 만찬 기록이 유월절 의식과 불일치한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전적으로
기독교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20
실제적으로 어떻게 떡을 만들어 주의 만찬에 사용하고
있는가?. 천주교에서는 미사 거행을 위한 떡은 밀가루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체 교회의 전통이고 누룩없는 떡으로 한다는 것이 라틴 교회의 전통이다.
그리고 사제는 제병을 여러 조각으로 떼어 나눌 수
있고 그 크기는 신자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만들어야 한다. 떡을 떼어 나누는 행위는
사도시대에 그 자체가 성만찬을 지칭한 것으로 한 떡을 떼어 나누어 먹는 것은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21 현재는 과자의 웨하스처럼 입에 넣어 녹도록 얇고
둥굴게 만들어 신부가 입에 넣으면 녹게 되어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성체의 재료는 떡과
포도주라고 하면서 성체의 재료를 규정한다 해도 그 양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성체의
재료로서 떡은 밀알로 된 것이어야 하며 다른 곡식으로 된 떡이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는데
왜냐하면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밀로된 떡을 축성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바 이 성사가 죽음의 기념 또는 땅에 떨어진 밀알로 비유되고 있으며
셋째로 가장 영양분이 많은 밀떡으로 성사의 효과를 드러내는 원료를 삼았고 넷째로
재료에 있어서는 누룩이 든 떡이나 들지않은 떡이나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면서
그러나 라틴교회에서는 누룩이 들지 않은 떡을 선택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성체성사를 누룩이 들지 않은 떡을 먹는 축제 첫날에 세우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부패와 거리가 먼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데 이 떡이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에게도 잘 적용되어서 이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서 잘 갖추어야
할 진지함을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22
동방교회들(미국교회는 예외)은 성만찬에서 관습적으로
유교병을 사용하는 반면 서방의 카토릭에서는 무교병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관습상의
차이는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에 있어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영국 국교회에서는 1549년 영국성공회 기도서에서
무교병의 계속 사용을 지시했으나 1552년의 성공회 기도서에서는 명령은 아니었지만
유교병을 허용했다. 엘리자베스여왕은 금지령을 내려 다시 무교병의 사용을 시행하려
했으나 1661년에 개정된 기도서는 실제로 1552년의 전례 법규를 개정없이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추밀원 사법위원회는 전례 법규상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떡을 사용하라고 지시된 것이라는 판결을 두번씩 내렸다. 성공회의 여러 부분들에서의
개정안들은 양자 중에 어느것을 사용해도 좋다는 것을 명문화하였고 유교병은 일반적으로
비국교도들에 의하여 사용되고 있다.(23
대다수의 개신교에서는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은 밀가루에
기름을 바르고 후라이팬에 구워서 만든다. 일부 교회에서 간편이 하기 위하여 토스트를
사서 만드는 것은 먹기는 편리할 수 있으나 그러나 최후의 만찬에서 전승된 떡으로
상징되는 성만찬에서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일부 교회에서는 시중의 포도주를
사서 성만찬의 잔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잔은 포도주가 아니라
붉은 포도즙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포도를 가지고 만든 포도즙이어야 한다.
매주 성만찬을 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어느
교역자는 성만찬 떡의 재료에 대하여 레위기 2장에 근거하여 3가지 방법중에서 굽는
무교병을 사용하고 있는데 레위기 2장 4-7절에는 첫째로 화덕에 굽는 방법(4절) 둘째로
번철에 부치는 방법(5,6절) 셋째로 솥에 삶는 방법(7절)이 나오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후라이팬에 굽는 방법인데 기름을 섞어서 소금을 치고(13절)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무교병은 고난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출13:6-10) 카스테라류의
무교병이 아니라 딱딱한 무교병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히브리민족의 주식은
밀가루 였기 때문에 밀가루로 성만찬 재료를 삼는다고 주장하며 일부 교회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여 한국의 주식인 쌀의 가루를 사용하고 있는데 성서대로 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24
성만찬 떡에 소금을 치는 것이 성서적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는데 레위기 2장 13절에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
했으므로 소금을 넣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고린도 전서 5장 7,8절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은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했다. 바울의
이러한 초대는 유월절 준비를 위한 유다이즘의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율법을 윤리적
원칙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적으로 변형시킨
독창적인 의식이므로 구약의 율법적인 재료관에 억매어 내적 의미를 평가절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애급기 13장 6절부터 10절에는 그 누구도 유월절
주간 동안 자기 집이나 주인 집에 누룩이 들어간 음식이나 누룩 조각도 보존해서는
안되었다. 그 주간에 익혀진 떡은 azyme(그리스어로는 A-zumos=누룩없는, 히브리어로는
matza) 이었는데 그것은 애급에서 쫏기다시피 나오면서 준비했던 '고난의 떡'을 상기
시키기 위한 것이다(신16:3)
그러한 기억에 완전하게 충실하기 위한 욕구는 모든
유대인 가정으로 하여금 유월절 전날 밤에 누룩이 있는지 없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게끔
한다. 미쉬나(Mishna)에서는 가장 완벽한 결과를 얻기 위한 유대인 가정에 대하여
증언한다.(25 "니산달(Nissan) 14일 저녁에 사람들은 촛불을 밝혀 들고 누룩을
찾아 나선다. 누룩을 두지 않은 장소도 모두 찾아보아야 한다"(Pes1:1). 누룩을
찾게 되면 그것은 불속에 태워질 것이다(Pes1:4). 예를 들면 팔기 위해 쌓아둔 음식이나
음료수는 다음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팔려져야만 한다. "칠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출13:7) 라고 했다.(26 유월절에 누룩없는 떡에 대하여 얼마나 철저히
지키도록 강조했는지 알수 있다. 유월절 계승의 성만찬 떡재료에서는 무교병 사용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장 3-4절과 16-22절과 11장 20-34절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성만찬 사상은 10장 3-4절에서 출애급적 사고가 포함되어 유월절의
기념으로 전승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장 20-34절의 말씀에는
잔-떡의 순서도 '축복의 잔'이 떡에 대해서 행하는 축복과 함께 본식을 형성하고
있는 마지막 행위로서 나타나는 유대인 식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과 상치된다.(27
바울의 텍스트에서는 잔이 나온 다음에 '우리가 쪼개는 떡'으로 나타나는데 유다인
전승들은 최소한 올리브처럼 중요한 부분으로 떡이 없는 식사는 있을 수 없다. 축제
때에 식사 초기에 전식이 있은 다음 포도주를 제공하고 연회 참석자들은 손을 씻고
식사 주재자는 두 손으로 자기 앞에 놓여진 떡(현재 근동지방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둥그런 떡)을 살짝 들어 올리고 시편 104편 14-15절의 기도를 올린다. 기독교의 성만찬에
관한 일련의 관점들-가장 오래된 기독교 저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 관점들의 기원이
유다적인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다이즘의 유산에 기독교적인 고유의 것이 바울의 저술속에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3). 기타 자료에 나타난 떡의 재료
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전례적 의식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엘레우시니아에서는 밀의 제의에 참가하고져
하는 사람들은 그 준비로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하였으며 마음과 생명의 정화가 필요했다.
그들은 다른 일들은 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은 채(퀴케온:혼합한다는 뜻)-옥수수 가루나
물로 만든 진한 죽으로 비탄에 잠긴 데메테르여신이 9일간을 굶은 뒤에 마시는 보리,
굵게 빻은 밀, 물 그리고 박하나무 잎사귀등으로 만든 음료와 비슷하다고 함-한잔만을
마셨다.
만일 이 의식을 서술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원문을(28 로벡이
해석하여 놓은 것이 옳다면 아마도 성별된 떡을 먹었을 것이 틀림없다.
(2). 순교자 유스티누스와 테르툴리아누스는 미드라교에서도 성례전
형태가 있었다고 말하며, 특히 유스티누스는 "떡과 한잔의 물이 성스러운 의식들이
행하여 지는 도중에 축복의 말과 함께 주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29
(3). 최근에 발견된 비문에서는 사모드라키아의 제전에서는 먹고 마시는
의식이 있었는데 "사제는 떡을 쪼개고 잔을 채웠다"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30
이상과 같은 기록 외에도 모든 식사와 관계되는 법규는 역사의 변천 속에서
바리새인파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전통을 지키는 자들로서 일정한 시기에 그 법규들을
지키며 체계화했던 그들의 관습에 대하여 정확히 증언해 주고 있다.
플라비우스 요셉은 에세네파 사람들의 식사에 대하여
전하고 있고(유대인들의 전쟁,11, pp.129-130)(31 뒤이어 쿰란에서의 수사본 발견은
그런 법규들의 특징을 밝혀주었다. 이 문헌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은 첫번째로 떡과
포도주는 순한 것과 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사제들의 우선권과 그 의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공동체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10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한 명의 사제가 있다. 각자 차례대로 사제앞에 앉는다. 그들은 사제에게서
모든 일과 숙고하는 일에 대하여 자문을 받게 된다. 먹거나 순한 포도주를 받아 마시기
위하여 식탁을 준비할 때 사제는 시작시 떡과 포도주에 축복하기 위해 첫번째로 개입한다"(IQS
VI,3b-5,공동체 규칙11,17b-21)(32라고 했다.
에집트에서 번창하던 에세네파의 한 부류에 속하는
치유자들의 식사에 대해 묘사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 쓴 'De vita contemplativa(묵상하는
삶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일곱째 날은 매우 거룩하고 대 축제의 날로 마음을
경건히 한다. 음식은 결코 화려하지 않는 평상시의 떡이거나 시장에서 사오는 떡이다.
양념으로는 히솝(박하향과 같음)으로 아주 미묘한 맛을 내게 되는 소금(떡과 소금은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다)을 쓴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와 영혼의 교활한 적인 실컷
먹고 마시는 것을 피하면서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 먹고 목마르지 않기 위해서 마신다"(De
vita,pp36-37)(33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의 식사는 매일의 습관적인 식사를 반영하는
것이었고 일곱째 주간의 연회도 결코 다르지 않았고 다만 이 식사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은 전례적인 것이고 그것은 일곱째 주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식사는 먹기 전에는 침묵을 지키고 정중한 자세를
취하면서 그 그룹의 구성원들은 성경을 읽거나 연장자가 하는 교훈을 듣고 그리고
찬미가를 부른다. 찬미가가 끝난 후에는 식사를 했는데 이에 대하여 필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젊은이들은 식탁을 준비하고 식탁 위에는 아주 단순한
양식이 놓여진다. 누룩이 들지 않은 떡과 양념으로는 히솝이 섞인 소금이 있는데
그것은 성전의 거룩한 현관에 놓여진(준비된) 성스러운 식탁에 대한 경외심에서이다.
이 식탁 위에는 떡과 양념이 없는 소금이 있다. 떡은 azyme이고 소금은 아무것도
섞지 않은 것이다. 최상의 순수한 상태로 섞지 않은 물건은 의식을 지키는 사제의
몫이었다"(De vita,81-82).
성만찬의 제정에서 전례적인 형태가 떡과 포도주의
유대인 식사에 비하여 보다 폭 넓은 독자적 성격을 띄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독특성이 증거되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식사의 맥락에서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에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에 의하여 서로 다른 성만찬에
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공통점을 가지는데 셈족 문화권 안에서
더욱 그렇다. "함께 하는 식사가 식탁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 식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옛 동양적 개념이다. 함께하는 식사 때마다 식탁 공동체는 떡을
쪼개는 의식으로 설정된다"(34
지금까지 구약의 소제물과 유월절 떡과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떡재료에 대하여 검토한 바와 같이 성만찬 기초의 근거가 되는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의 독창적인 의식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극히 유월절적인
형태를 닮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성만찬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떡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 우리 교회가 행하고 있는
성만찬은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떡의 재료 사용도 성서적이어야 한다.
교회가 떡의 재료의 통일성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무교병을 먹는 절기에 제자들과
같이 유월절을 준비하여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예수님은 새 언약을 언급하여 새로운
예식의 시작을 선언하셨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만찬떡의 재료는 영국 성공회는
유교병이나 무교병이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그리고 루터교에서는 무교병으로 서방교회에서는
웨하스 과자 모양의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무교병을 사용하고, 동방교회는 보통
떡에 누룩을 넣고 구운 유교병을 사용한다. 오랫동안 재료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
왔는데 성서적 관점에서 개신교의 성만찬 떡은 밀로 만든 누룩없는 떡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1971년 율리히(Julich)와 베르그(Berg)회의에서 성만찬
재료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떡과 잔에 대한 논의 끝에 천성적으로 포도주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음료수도 좋다는 결정과 함께 빵과 포도주가 없는 나라에서는 우유,
맥주, 전분, 과육 등을 대신해도 좋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교통이 발달되어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속에서는 수입하여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35
그리고 성만찬이 끝난 후에 남은 떡의 처리는 종교개혁에서
주장한 것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한 것 외에 예전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이 내용의 의미는 성만찬이 끝난 후 남은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성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끝난 다음에는 남은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실제의 상징이 되는 것이 소멸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만찬
후에 남은 떡의 처리 방법은 가능한 한 남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고 남은 떡의
처리는 장로나 제직들이 먹거나 마시고 병자나 불참자에게 가져가 성만찬에 참예토록
하거나 땅에 묻는 방법도 가능하다. 바끼에(R. Paquier)는 유월절에 남은 식사를
버린것 처럼 버릴 것을 주장했다.(36
성서적 성만찬 떡재료는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교회에서
행하는 성만찬에서 그 재료에 대하여 바르게 교육하고 바르게 집례하도록 해야 한다.
소제물과 유월절 무교병의 식사를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은 전승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독창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행하는
성만찬 재료에서 누룩없는 떡은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된 독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1) 떡과 포도주의 토착화를 주장하거나 시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포도즙는 보혈을 상징하는 색깔이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고, 떡의
사용도 성서적 근거를 가지는 것이 좋다.
2) 조동호, {성만찬 예배}(서울: 은혜출판사, 1995), p.251.
3) 알멘 편, {성서어휘사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0),s.v. 성만찬
4) J.Jeremias, The Eucharistic Words of Jesus(London:SCM Press), p.168.
5) J.F.White, {기독교 예배학 입문} 정장복 역(서울: 종로서적, 1991). pp.3-4.
6) 김외식, "예배와 성례전," {예배갱신과 목회}(서울: 감신대학출판부,
1991), p.89.에서 재인용.
7) 박근원, {리마예식서}(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1987), p.2.
8) 기흥순, {성만찬과 예배갱신}(서울: 나단출판,1994), p.33.
9) William D.Maxwell, A History of Christian Worship(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36), pp.6-7.
10) 김소영, {예배와 생활}(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7), pp.107-108.
11) 성수경, {초대교회 신학요강}(서울: 새한문화사, 1971), pp118-119.
12) D.G.Dix, The Shape of the Liturgy(London: A & C Black, 1986), p.36.
13) 알렝 마르샤두 저, 안병철 역, {성서에 나타난 성체성사}(서울: 카톨릭출판사,1988),
pp.20-25.
14) {성서백과대사전}(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0), s.v 떡만들기.
15) J. Benzinger, Hebraische Archaologie(3rd ed. 1927), pp.62-66.
16) R.A.S.Macalister, The Excavation of Gezer,
11(1912), pp.42-44.
17) C. H. Gordon, Ugaritic Literature(1949),p.71.
18) 최윤권, {깨어진 십자가}(서울: 태광출판사, 1982), p.35.
19) J.Jeremias, op.cit.,
p.62.
20) D.G.Dix, op.cit.,p.36.
21) 최윤환, {간추린 미사해설}(서울: 카톨릭출판사, 1982), p.14.
22) G. 달 사쏘 R. 꼬치 편, 이재룡역,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요약}(서울:
카톨릭 대학교 출판부,1993), pp.472-473.
23) Among the earliest undisputed witnesses for unleavened bread are Alcuin
(ep. 90, ad fratres Lugdunenses, A.D. 798; PL, c, 289) and his pupil, Rabanus
Maurus (Instit. Cler. 31).
24) 구제남 목사 시무 성화교회에서 시행하는 성만찬 재료 사용 방법으로서 구제남
목사 목사고시 논문에서 성만찬 재료 부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25) 미쉬나(Mishna) 속에서 발견된 법령집은 대개 기원전 200년경에 편집되었다.
그러나 이 법령집이 담고 있는 대부분의 계명들은 예수시대, 흔히는 그 이전 시대로부터
익히 알려져 온 습관들에 대해 증언해 준다.
26) 알렝 마르샤두, 전게서, p.51.
27) Qiddoush 의식에서는 제외, 그러나 이 의식은 예수와 사도시대에는 실천되지
않았었다.
28) Clem. Alex. Protrept.11.
21(89).
29) Justin, Apol. 1.
66, Dial. c. Tryph.
70.
30) Dieterich, p.1041.
31) Flavius Josephe, {유대인 전쟁},11. Paris, 1980. pp.32-33.
32) Les textes de Qumran traduits et anotes, Letouzey et Ane, 1963,t.l,p.44.t.11,p.26.Cf.Supplement
au C.E.28,p.35.
33) Philon Alexandrie, De vita contemplativa, coll.Les{Euvres de Philon Alexandrie,
Cerf,1963. 삽입구는 원택스트에 없는 설명을 내포하고 있다.
34) J. Jeremias, La derniere Cene, Cerf, 1972, p.264. Dans le meme sens, p.267.
"예수는 쪼개어진 빵으로 당신 육체(몸)의 운명에 대한 표상이 되게 하고 포도액으로부터는
흘려진 당신의 피의 표상이 되게 한다."
35) 장성우, {성례전과 그리스도의 교회 교리}(한성신학교,1990), p.23.
36) 장성우, {성례전}(한성신학교, 1992), p.24. 출애급기 12장 10절에는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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