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 회복을 위한 제언

장성우 목사


1. 서론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성을 지닌 민주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교회형태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정체성(Identity)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본 논문은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 회복을 위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연구함으로써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현주소를 찾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서적 교회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며 신약에 예시되어 있는 교회 형태는 회중적 교회였으며 우리는 그 모형대로 회복해야 할 환원(Restoration)의 시급성이 있다. 그런데 1930년 이후 한국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어려운 시련을 겪었으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환원신학 교육의 결핍과 교파적 성장 위주의 교회관을 도입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중성은 퇴색되고 교역자의 기호에 따라 각종 교파 흉내를 내는 풍조가 만연해지게 되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 정체(政體)가 전체적인 중앙집권적이거나 감독체제는 불합리하다. 그렇다면 민주화 시대와 동행하는 민주적인 교회의 창출이 불가피하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민주적이며 회중적인 교회이다. 가장 모범적인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 교회를 세워 모든 교회들에게 귀감이 된다면 분명히 그리스도의 교회는 새로운 비전을 이 시대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의 교회의 이상(理想)을 그리며 고뇌하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많은 동역자들에게 밝은 내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교회 정체성 회복을 위한 촉매제로서 연구의 필요성을 느낀다. 아직 한국에 번역된 역서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료의 빈곤성에 한계를 느끼면서 앞으로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기를 바라면서 본 논문을 작성한다.

2. 성서적 배경과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은 성서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국적 상황에서 신앙의 무질서를 초래했거나 개인주의적인 형태로만의 고정 관념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된다. 회중적 자유(Freedom)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성경적 유산 속에 이어온 것을 인지해야 한다.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통성은 신앙의 생명력과 진리의 심오함과 영적 권능을 장점으로 지니고 있다. 회중성 자체는 고도의 규율을 지키는 자율적인 권위를 가지는 부류 속에서만 행할 수 있으며, 그것의 연속성은 정신상의 능력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는 다양성 속의 일치로의 결집력이다. 결국 회중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구성은 '계약백성(契約百姓)'의 개념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본문의 말씀은 회중의 정신적 힘은 우리가 '계약백성'이라는 것이다. 규율과 권위의 위대한 원천은 '계약백성'으로서의 우리 생활 속에 있다.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유롭고 개방되고 단순하지만 그것은 언약의 행위가 이행되는 교회인 것이다.[민병소, {회중신학}(서울: 세계 종교현상 연구소, 1984), pp. 48-53.]

교회는 그리스도의 직무(Ministry)에 참여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百姓)들의 모임이다(벧전 2:9, 요 17:18, 막 3:13-15).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존재 양식은 마땅히 그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와 각 지체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상호 일치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자기를 비어 없이하고 인간이 되신 분이다(빌 2:6-8).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따라서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고 일하고 돌아가신 분이다. 이 삶을 따라 사는 방식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어(히 2:17) 그들 속에 살고, 사귐을 가지심으로 회중과 동격이었다. 복음은 사귐(Koinonia)의 회복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 메시지의 중요부분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사귐의 회복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귐의 회복이다 (요일 1:8). 이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인간성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 자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심이라(엡 2:14-16).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적 사귐 속에서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 모두에게 세상 속에서 사명을 부여했다(요 17:18).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자기 위치에서 받은바 은사를 간직하여 서로 봉사함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벧전 4:10).[유동식, "평신도 운동의 본질", {기독교 사상} 1963년 2월, pp. 26-31.]

만인 제사장 주의로 시작된 Martin Luther의 개혁 사상은 점차 퇴색되고 교직자와 신도들 사이에 넓은 간격을 이루었고 마치 계급간의 차이처럼 교회의 하나됨까지 균열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교직 계급의 깊은 거리는 장엄한 의식, 교권의 강화를 이루고 있다. 회중운동은 교직 계급에 대항하는 운동이 아니며, 회중이란 평신도의 뜻도 있는데 'Laity'라는 라틴 말의 'Laos'에서 나온 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곧 하나님의 백성 운동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건설 운동을 한다는 뜻이다. 고로 회중의 의미 속에 평신도의 위치와 사명은 교직 계급과 대응시켜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모체가 되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질적 위치와 사명을 명백히 함으로서 명확해 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명을 위하여 그들을 불러 모우시고 한 모임을 이루게 했으며 사도 바울은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모든 신자들과 사도들은 그의 움직이는 몸의 지체가 된다고 표시하였다. 이 주님의 시키시는 일이 곧 교회의 직능이다.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사도행전은 스데반의 설교와 그로 인한 그의 순교, 그리고 빌립 집사의 전도와 바울의 회심 등 사도직과 평신도직의 사명구분이 엄격히 시행되지 않은 점을 고찰할 수가 있다. 그리고 무수한 평신도들이 간 곳마다 가정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고, 공식적인 사도직이 부여되지 아니한 무수한 평신도 전도자들이 선교운동에 전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의 신도들을 위하여 손수 연보를 수집하여 가지고 올라가서 구호했으며 그 자신은 주야로 노동을 해서 자기 생계를 유지하며 전도하였다.

오늘날 교직 중심의 교회는 옛날 유대교의 성전중심 종교가 제사장중심 종교로 전락된 것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우리는 유대교의 타락적 모습에서 우리를 반성하여 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룩해야 하겠다.[조향록, "목사와 평신도의 관계", {기독교 사상} 1963년 2월, pp. 44-5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이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교회의 전권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봉사적 사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형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3. 회중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그리스도를 믿는 회중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루터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형의 교회 조직을 반대하고 성직자와 일반 신도를 구별하는 이중 윤리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그는 1520년에 발표한 세 논문에서 한결같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직이며 그들 가운데 직무 때문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벨론 포로, 그리스도인 자유). 특히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는 "교직의 의미가 현재 성직자들이라 불리고 있는 소수 사람들에게 잘못 적용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그는 사제라는 말은 "섬기는 자들," "종들," "청지기들"이란 칭호와 구별하지 않았고, "기독교 귀족"에서는 "모든 믿는 사람은 참 제사장이요, 감독이요, 교황이다"라고 했다.

종교개혁 이전의 10세기부터의 수도원 운동은 결코 로마카톨릭 교회 안에 속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반항적이었다. 그들의 대표적인 수도단 중의 하나인 Albigenses는 이태리 Albi시에서 시작된 일종의 경건파 신도들의 운동이었다. 그들의 운동은 남 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거기서 13세기까지 강한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처음에는 그들도 로마 카톨릭 사교(司敎)를 모시고 집회를 가지고 학교와 구제상업을 하였으나, 나중에는 카톨릭 사교를 내어 쫓고 교회 건물을 점령하고 그들 중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여 카톨릭 교회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들은 카톨릭 교권주의를 대항하여 싸운 최초의 회중운동이라 하겠다.그들의 혁명적인 운동 이후에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끼쳐 주었다.

그리고 Waldenses파는 이태리 Alps산 Cottian계곡에서 기원한 일종의 금욕주의자들의 운동이었다.
이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커서 구라파 일대에 번졌으며 종교개혁 이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존속하였다. Waldenses파는 불란서와 헝가리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들의 운동에서 직접 자극을 받고 드디어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들은 순 평신도로서 일체 계급제도를 배격하교 초대교회의 순수한 기독교 운동을 따른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회중적 단체들이 활발하여 지면서 11세기에 Gregory II는 교회 안에서 교역자와 평신도는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선포하였다. 다만 교역자의 임무는 성례를 집행하는 자격이 부여되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12세기이래 회중적 운동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발언이 커져서 사교들에게 집적 항의를 제기한 사실도 있다. 그들은 공중예배에 사용하는 말은 좀 더 쉬운 말을 사용해 달라고 하였으며 평신도들에게도 성경을 읽을 자유를 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이 회중들의 강력한 요구는 평신도들과 사제급의 교직자 사이에 대립이 점점 뚜렷해졌다. 결국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이르러 소수의 사제의 권위보다 절대 다수의 일반 신도들의 자주성의 중요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그리스도인은 만물 위에 있다는 자유로운 주로서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아니한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섬기는 종으로 누구에게든지 예속한다"고 했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사제나 평신도에게는 우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했고, 또 이 책 제 17장에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 사제라면 사제와 평신도들 사이의 구별은 무엇인가? 사제나 승려나 성직의 칭호가 영적이니 의미의 어떤 특수 계급에만 붙여야 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들에게 Ministro, Servos, Eoconomos라는 명칭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복음을 위한 일꾼, 종, 집사가 되었다는 것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루터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를 줄여서 한 지위에 두었다. 그래서 평신도도 사제와 똑같은 위치에서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으며 또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카톨릭 교회에서 종래 성만찬에서 빵만 받고 포도주는 받지 못했으나 루터의 이러한 주장 후 평신도들도 포도주를 받게 되었다.

루터의 만인사제설은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개재했던 사제의 중재를 부인하고 누구나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평신도들도 직접 성경을 읽어야 한다 주장하였다. 그래서 루터 자신이 성경을 번역하여 평신도들에게 주었다. 그 결과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로 돌아가게 하였다.

사제의 중재나 종교적 의식에 의한 속죄 사상을 배격하고 교황청에서 발행한 면죄부의 무효를 주장하였으며 공덕 사상을 부정하였다. 다만 십자가의 은총을 믿는 신앙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루터의 개혁운동은 평신도들을 각성시키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종래에 교회를 가리켜 하던 말 "성도의 교제"(Sanotoorum Communio)는 개혁 이후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성도는 단순한 군중(Laos)이 아니라, 각자가 자주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3:17)이다.

그래서 루터는 칼빈의 맹종적인 신앙(Fides Implicita)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였다. 칼빈은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라"(Soli Deo Gloria)는 주제를 가지고 그의 신학을 수립하였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절대 복종하며 무조건 그를 예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맹목적 신앙은 참된 신앙을 상실하게 하며 말살할 우려가 있다. 신앙은 결코 무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웃에 대한 자각적인 봉사에 자기 만족을 느끼면서 사회생활을 충실히 하며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에 대한 책임적 응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기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하며 모든 현실을 구체적으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회중교회 운동은 재세례파(Anabaptists)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교회 개혁에 있어서 급진적 행동을 취했으며 그들의 최고 목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Anabaptists는 세상과 분리된 생활을 하며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의 삶의 양식을 전적으로 완성하는 성스러운 생활방법을 택하였으며 이들 공동체의 내적 생활의 특징은 만인 제사직으로 회심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완전한 사제직을 주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설교하고,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고, 전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교회 내에서 어떤 신급(Grade)이나 계급(Rank)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신도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하나님의 일(Ministry)에 참여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e/1550-1633)을 중심한 회중교회 운동은 믿는 자들은 대제사장이란 신념 속에서 16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 전달되어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죤 그라스(John Glas/1695-1773), 로버트 샌드맨(Robert Sandman/1718-1771), 할데인(Haldane) 형제 등이 주축을 이루어 계승되었다.

초대교회는 내적으로 성령의 지시를 받아 순수한 신앙을 지킨 교회이며, 회중적 자발성 속에서 자유롭고 열의 있는 교회였다. 그래서 회중들의 자발적이며 활동적인 훈련이 이루어졌다.

그후 18세기에 영국 John Wesley가 교회 안의 평신도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깊이 연구하여 회중운동의 합리성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감리교회에서 처음으로 평신도 설교자가 탄생하였다.
웨슬레도 처음에는 평신도 설교자의 출현을 환영하지 않았으나, 후에 그들의 활동을 보고 그대로 인정하였다. 오늘날의 속회나 구역예배가 여기에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회집에서는 반드시 평신도가 인도했는데 여기에 평신도 훈련의 필요성이 강조되게 되었고, 활동분야가 정해졌으며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치가 뚜렷하게 되었다. 이렇게 감리교회가 모든 교파보다 먼저 평신도 운동을 인정하게 된 것도 종교개혁의 간접적 영향이었다.[김철손, "종교개혁과 평신도 각성," {기독교 사상} 1961년 11월, pp. 38-44.]

교회가 조직화됨에 따라 안수 받은 교직자 제도(Kleros)가 생기고 교회의 중심사인 성찬과 예배가 교직자 주관으로 시행됨으로 교직자의 권위가 높아지고 전체 교회의 회중은 소외되게 되었다. 핸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박사는 "평신도 신학(A Theology of the Laity)"에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교회는 세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 조직 가운데 평신도의 의의에 대한 표현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기껏해야 평신도는 양의 무리였다. 그것은 언제나 대상이었지 결코 그 자신의 소명과 책임에 있어서 주체는 아니었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예배하는 공동사회를 뜻한다. 이와 같은 기독교 공동사회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세계에서 불러냄을 받은 교회이다. 평신도에 대한 의의의 중대성은 평신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도적 선택된 백성이라는데 있다.

교회의 생명과 사명은 곧 평신도의 생명과 사명이 된다. 그러나 교파적 교회가 기독교의 창조적 소수와 세계에 증인으로 흩어진 무리들을 고립된 소수로 만들고 있다. 미국의 뉴저지(New Jersey)주의 프렐링호이젠(Frelinghuysen)과 매사츄세츠 주의 죠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설교의 힘으로 회중적 교회가 시작된 후 1740년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미국의 전국을 순회함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다.

회중교회 교인들 중에 이 부흥 운동가들의 활동을 환영한 사람을 "새 빛(New Light)"이라 불렀고, 반대한 사람을 "옛빛(Old Light)"라 불렀다. 그리고 장로교인들도 "새 편(new side)"과 "옛 편(old side)"로 나눠졌다.[J. W. C. 완드, {교회사(근세편) 이장식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1), p. 346.]

미국의 Anabaptists는 1486년에 출생하여 28세에 신부가 되어 40세인 1526년에 재세례파에 가입하여 교역을 한 맨노 시몬스(Manno Simons)에 의한 메노나잇(The Mennonites) 교회는 미국에서 1683년 독일 그레펠드에서 온 화란계 13가족의 식구들로 편실바니아주 저만 타운에 정착했고 그후 100년간 계속 활동했으며 특히 스위스 멘노나잇 교도들은 펜실바니아에 이주하여 인디안과 접촉했다. 상화 화친을 도모했다. 그들은 자치제의 교회정치와 전국회의, 지방회의, 지방화의의 자문기관이 있고 최후 결정은 개 교회에서 했으며, 개 교회는 감독 혹은 장로와 목사 및 집사로 조직되어 있고 교역자는 자급 생활을 했으며 그들의 세례 방법은 침례였으며, 성찬과 세족식을 거행했다.[Ibid., pp. 337-338]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회중 사상가인 죤 와딩톤(John Waddington)은 회중사상에 관한 역사를 3권 편집하면서 마르틴 루터를 회중 사상의 선각자라고 했다.[John Waddington, Congregational History, Vol. 1.(London: Hohn Snow & Co. 1869), p. 152.]

루터의 회중사상은 자유와 책임 또는 자유와 헌신사이의 관련성을 합리적으로 루터의 사역에 관한 이론 가운데서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가장 넓은 의미의 사역이란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헌신을 포함하고 있음을 말한다"라고 하여 모든 사역은 세례 받음에서부터 유래된다고 했고 교회 내의 공공질서와 편의체제를 위해서는 어떤 개인이 봉사와 회의를 주관할 수 있도록 위임을 받게 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례전도 집행한다고 했다.

루터의 사역관은 다음과 같다.

"사역자는 업무상의 책임자에 불과하다. 그가 사무실 안에 있는 동안에는 선행의 우선권이 있기는 하나 사무실 밖에서는 단지 휴식을 좋아하는 농부로서 마을 사람인 것이다."[Theron D. Price, Church Encyclopedia of Southern Baptists I(Nashville: Broadman Press, 1958), p. 276.] "교회가 사역자들에게 안수를 베풀고, 뽑고, 사역을 맡기는 데는 권에 보존이 필요했던 것이다. 권위는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절에서 인간의 힘이 아닌 교회에 주어진 실제적인 선물로 이해를 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 특별히 교회의 사역자에게 베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을 증언하는 목회 행위를 위해 특이한 권위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참 교회가 실재하는 곳은 어디든지 필연적으로 위임과 안수 받은 목회자가 필요하다. 모든 회중은 목회자를 선임하고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했다.[Martin Luther, Refutation of the XII Articles of the Peasants(Triglot Concordia: Luther's Works, 1921). Frederick W. Stellhorn, "Congregation," The Lutheran Encyclopedia(London: Baker Book House, 1950]

4. 현대 교회 속에 회중사상

회중 사상가들은 확고한 사상을 지닌 평신도였다. 뉴 잉글랜드의 죤 코튼(Jhon Cotton), 죤 와이스(John Wise), 호레이스 뷰쉬넬(Horace Bushnell), 조나단 에드위드(Johnathan Edwards),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Tyler), 나다나엘 엠몬스(Nathanael Emmons) 등이 있다.

이들 회중 사상사가는 "은총"의 전달자로 자처하는 행위의 불경을 명확히 했다. 그들은 권위적인 위선이라 할 수 있는 도그마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로서의 하나님의 은총을 믿고 확신했을 뿐이다.

신약 성경의 감독(Bishop)은 장로의 동격어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중요한 직임을 맡은바, 이는 교회 신분적이 아니라 인격적이자 영적인 것이다. 은총을 선포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안수 받은 성직자와 사제들만이 아니다. 은총이란 모든 사랑과 모든 거룩함에 관련된 영광스러운 인격 관계성을 뜻한다. 한스 큉은 "만인제사직은 성경의 핵심이다. 에큐메니칼 신학(Ecumenical Theology)은 그런 의미에서 사역에 관한 신약 성경의 개념 자체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1) 회중 사상에 입각한 그리스도의 교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 사상에 입각한 신앙을 생각할 때이다. 함께 계획하고, 함께 친교를 나누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 모습인 것이다. 여기서 회중 사상의 본질과 필요성과 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이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주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회중사상의 탁월한 진리임을 믿는다.

(1)우리들이 주라고 고백하고 모여진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다 성년이 된 회중 사상적인 시민은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투표로 표현할 수 있기에 투표함에다 표를 던질 수 잇는 권리가 있다. 오늘날 모든 교파가 회중주의(Congregationalism)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교회정치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퇴색되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2)모여진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중사상은 기구를 중심으로 집약된 사상이 아니다. 인간은 집단을 형성하는 두 가지 사상을 가졌는데 정치적 기구와 공동체 형성을 말하고 있다. 회중사상은 정치적 기구보다는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공동체형성은 자연적인 그룹화 운동이나 기구는 인위적인 것이 그 특징이다. 정치적 기구는 계층간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대중들을 장악하려는 편의상의 수단으로서 지배자와 정복자에 의하여 관할되어 진다. 부족, 종족혈맹은 공동체 형성의 본보기이고, 도시, 시골, 국가 같은 기구는 인위적인 조직이다.

죄 많은 인간들이 모여 있는 다원화된 세계에서 정치적인 기구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영이 있는 공동체에는 우호적인 친교행위가 있다. 회중사상은 그들이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응답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선교하는 자유스러운 회중을 원한다.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사상은 독립체제 속에서 하나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많은 지역 교회들이 서로 친교 행위로 연결되어 있다. 개 교회주의를 고수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친교 행위의 부족으로 회중사상의 중요한 영적 주류를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교는 통제력에 의하여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사랑의 발로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신약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다. 신약성경을 통해서 맺어진 우리는 서로 동등하게 교회 안에서 친교를 나누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는 교회의 권위 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많은 교회들, 총회가 하나의 교회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함께 상호의존적인 사랑의 분위기에 젖어 있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회중사상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제든지 자발적인 태도로 상호간에 상의와 협조, 그리고 영감력 등을 보존 유지해야 한다. 친교의 궁극적인 행위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율법이 아닌 사랑이 교회를 함께 묶어 놓는 연결점이 되는 것이다.

(3)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사상은 정치적인 것도 아니며 기구적인 것도 아니다. 또한 권위적(Authoritarian)인 것도 아니다. 개 교회에 우선하는 어떤 교회 체제나 정치 지도급 인물이라 해서 권위의식으로 행세할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주인이시다. 그리스도가 각 개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밝혀 보여 주시고(계시)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권위가 되신다. 총회장, 감독이라 해서 교황과 마찬가지로 각 개 교회의 권위적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회중사상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점검하고 임의대로 재판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를 행사할 수 있는 어느 특정 계층이 없으며, 개교회적으로 회중사상에 입각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완전한 교회의 모형인 것이다.

(4)회중사상은 신조적인 것이 아니다.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의 친교행위는 지역적인, 국가적인, 국제적인, 고백체제 밑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확신 같은 것도 어떤 교리적인 표준에 두고 있지 않으며, 성경적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떤 신조적인 항목을 문학화시킬 때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질에서 이탈되고 만다. 그것이 친교의 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큰 자유를 향유해야 한다. 그와 함께 있는 우리들의 왕좌는 성경에 있는대로 영감받은 성령의 힘에 의해 독립적인 것이지 어떤 인위적으로 만든 신조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우리들 스스로가 신자 생활을 하고 있는 한 각 교파와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그 자체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일부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 특성따위는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되는 것이다.

중앙 집권화된 교단적 교회와 그리스도의 교회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중요한 구원문제인 동시에 귀중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며 기구를 통한 교단적 교파교회가 우리를 자유스럽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민병소, {회중신학 I}(서울: 세계 종교현상 연구소, 1984), pp. 209-229.]

5.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정체성과 회중성

초대 교회의 목회는 신약 성경에서 도시명을 따라 예루살렘, 안디옥, 데살로니가, 에베소, 고린도, 사마리아, 갈라디아 등과 같이 지역 명을 따라 교회 이름을 선정했고 상업 거래와 행정 집단의 요충지로서의 도시에 전도가 급속히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제반 행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시키지는 못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주권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특성 있는 회중들로서 구성되었으며 비전과 능력을 지니고 있고 창의적 회중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자발적인 현신, 봉사의 가관으로 생각했으며 삶의 터전을 삼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가 대형화 추구에 급급한 목회 행위만을 할 때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성공하는 교회를 양적 단위로 생각하고 수적 교회 성장만을 추구하는 교회는 대개가 질적 저하를 초래하며 신앙적인 낙후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목회자의 표준을 사업 경영자와 같은 경영방식의 목회 계획을 수립하는 세속적인 행위에 두고 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백성을 양적으로 충당시키는 주장을 일면에 두고 있다. 성도의 증가 중심 목회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구호 속에서 계기적인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과 미디어(Media)의 효율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상의 우선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본질상 그리스도론 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우리들은 책임적 역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목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오로지 기독론 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의 중요한 전통은 모두가 다 기독록을 바탕으로 하여 유산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한 세계에서 삶을 살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면, 마땅히 하나의 교회왕국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는 외부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 성공의 판단 기준은 계약 맺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잘 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이 말씀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들어야 할 성공에 따른 하나님의 칭찬이어야 한다.

우리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을 조명하고자 하면 그 역사 속에서 교회분열, 교권, 횡포, 목사와 평신도간의 알력 등으로 점철된 것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독재 속에서 민주화 과정을 걷고 있는 한국의 지표 속에 설정시키려면 현재적 방법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회복하고 폭 넓은 회중의 지지 속에서 회중적 방식에 의한 운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교파적 답습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으로 과감성을 가져야만 한다. 이것이 회중적인 회복이며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질적인 모형을 찾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국 선교 60년을 거치면서도 아직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회중성의 결핍이라고 말할 수 있다. 회중적 예배의식, 회중적 침례, 회중적 성만찬의 집례, 회중적 설교,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가 긴급히 조명 받아야 할 과제이다.

왜 회중적 교회가 지금까지 성공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는가? 그것은 한국적 특수한 상황 즉 유신과 같은 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피동적 사고방식이 교회 속에도 스며들어 강한 중앙 집권적 운영 체제가 각 교파에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회중의 역할이 증대되고, 교회에서는 민주적 운영 방식이 도입되어야 할 시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회중적 그리스도의 교회가 필연적으로 도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 영적, 집단일 뿐만 아니라, 회중적인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성취는 신약 성경의 말씀대로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  (엡 4:12-13)에 있다. 회중적인 성스러운 약속은 여성이나 남성, 모든 계층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다양성 속에서 개개인이 구체적으로 변화 받을 수 있다는 우주적 관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위한 일군적 사역은 그리스도인 모든 회중 속에서 은사대로 서로 분담되어져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든 사명은 직위가 아니라 직책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높고 낮음으로 표현되지 않는 맡겨진 교역(Ministry)이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이 서로 책임을 지는 개개인의 공동체이다. 서로간의 조화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더욱 더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고 사랑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도 값진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모습이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회개된 무리들이 책임의 소명을 굳게 하여 세상에서 교회가 성스럽게 구별 받는 중요한 이유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회중생활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모든 죄악에서 치료받는 진단과 처방이 되는 것이다. 회중생활의 건강유지를 위하여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말하고 있다.[Michael Kinnamon, Disciples of Christian the 21st Century(St. Louis, Missouri: C. B. P. Press, 1988), pp. 18-20.]

6.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의 전망과 제언

오늘까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1988년 6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국민경제소득이 5,000불을 넘으면서 경제적, 민주적 영향은 종교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농어촌 교역자까지도 식생활에 걱정을 덜게 되고 임금의 고소득화가 이루어지면서 국민 재분배에 활력을 가지고 민주적 사회 분위기와 함께 교회 민주화와 회중성 회복의 필요성이 서서히 요청되고 있다. 사회 전반적 조류는 기독교계가 대형교회 위주에서 직능별 집단교회로 요청되고 있으며 물질 위주의 교회 운영체계에서 영적 위주의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고, 성령운동 주도적 교회형태에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교회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교회의 형태의 변화를 촉구하며 모든 회중은 시대가 요청하는 교회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적 조직 위주의 교회와 전통적 기존 교회들은 탈바꿈을 하는 일에 여러 거지 제약 조건이 따르게 되어 있다.

모든 회중의 요청은 세대적 변화를 추구하며 갈증난 상태에 있으면서 교회의 회중적 변화의 지연에 짜증나 있고 이것이 대중화되면서 한국 전체 교회는 침체상태로 돌입되고 이것은 교회의 이탈 회중과 무관심 회중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는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하여 각성을 촉구하며 회중성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마저도 선교 60주년을 지나면서 만성적인 조직에서 변화를 유도하지 못하고 무사안일적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 정체성을 회복시켜야 할 기회이며 성서적 회중성에 대하여 깊이 연구해야 할 때이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 회중적 공동체가 큰 힘이었고 회중 개개인의 영적 성장이 공동체의 역할에 크게 작용되었다.

신약교회로의 환원운동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적 집약력을 발휘해야 하며 그 기초를 성경적 근거 위에 이룩해야 한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정체성을 잃고 교파 흉내만 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회중성의 상실에서 찾을 수 있다. 회중적 성서연구, 회중적 의결, 회중적 조직, 회중적 예배방식의 도입들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진로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31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 이후에 회중성에 대한 결핍은 교회간의 정립과 교회의 기반 구축에 실패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표류하는 상태를 유발하게 되었고, 많은 회중의 기대에 어긋나서 교파 교회로 떠나가는 비극적 상황을 표출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진로를 회중적 연구로부터 찾자는 의지집약과 함께 신약의 성경적 교회 회복에 그 목적을 두고자 한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21세기에 주도적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회중성의 회복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모범적이고 성서적인 교회의 환원이 이루어질 때만 회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obert L. Friedly and D. Duane Cummins, The Search for Identity(St. Louis, Missouri: C. B. P. Press, 1987), pp. 120-124]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광범위한 회중적 지지를 얻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급한 과제 앞에 놓여 있다. 이에 아래와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진 정체성 속에 회중성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성 요소를 띄고 있는 기본적 교리성을 지니고 있다. 성경 속에 나타난 빌립이 세례를 준 사건이라든가 지도자를 제비 뽑아 선정한 사실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회중적 요소를 지닌 교회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신약 교회의 목회자는 제사장적 위치가 아닌 가르치는 장로와 전도자의 위치에서 목회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정체성 자체가 회중성을 지녔으나 우리의 조직 체계가 교파화한 경향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중적 정체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모임 속에서 이룩된 회중적 모임이었다. 발톤 스톤은 그리스도인으로 연합적 운동에 주력했고, 알렉산더 캠벨은 제자로서 개혁적인 운동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환원적 교회로 추진했으나 그러나 이 모두가 근거한 성서적 기초는 Christian Church, Disciples Church와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추구한다는 것은 회중적 요소를 지닌 교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 속에 이룩된 교회 형태이며, 우리는 초대 교회에서 탈피하여 교권화, 중앙 집권화한 카톨릭 교회의 교황권에 대한 회중성 회복을 주장하는 운동의 과정을 거친 종교 개혁을 이어 연속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의 추구는 그리스도인의 회복에 초점을 두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서의 교회 회복에 주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횡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한 교회였다. Anabaptists가 종교개혁 후에 추구한 교회관도 신앙 공동체였다. 오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분 차별 없는 횡적 공동체를 이룩하자는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는 직책으로서 높고 낮음이 아니라 직무상의 분류로서 맡겨진 임무인 것이다. 민주적이며 평등한 관계에서 가르치고, 치리하고, 봉사하는 사명을 서로 나누어 가질 것이다. 오늘 현대 교회가 조직화, 교권화되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화하는 민주적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는 회중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매주 성만찬을 행하며, 그리스도인을 제한하여 축도권이나, 성찬집례권, 세례시행권을 규정하지 않는 성서적 예배 요소를 지니는 것은 회중적이라는 것이다. 성만찬을 나누며 말씀을 듣고 공동체적 예배를 집례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파적 성격으로 변질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래적 초대교회의 예배를 상실하고 제사장적이며, 권위적이며, 인위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 모형으로 회복을 원한다면 회중성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겠다.

7. 결론

우리는 이제 선교 60년을 이 땅 위에 확립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진로 결정을 못하고 있고 신학교육 역시 그리스도의 교회 자체 지도자인 교수 양성에 미급함을 드러내어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 양성에 차질이 생기고, 신학 교육의 부재를 초래해 왔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율적 운영과 교리의 독립성 등 많은 좋은 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칭찬 듣는 교회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 회복은 긴급히 요청되는 시대적 과업으로 남아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시적, 수직적, 종적, 교회방침이 아니라 수평적이며 횡적인 교회 형성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신학체계의 확립을 위한 실천적 목회 방향 설정이 요구되며 성공적 그리스도의 교회 표본으로서 횡적, 회중적 교회의 모델 케이스를 산출할 필요성이 있다.

민주적이면서 의견 집약적 교회 형태를 통한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의 방향설정은 앞으로 선교 2세기 동안 한국 교파 교회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합리적 운영형태를 도입할 수 있는 중요한 좌표 설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교회 회중성 회복은 시급하며 우리가 앞으로 더욱 연구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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