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9-01-02 15:44
하나뿐인 복음05: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1)(갈 1:6-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69  

하나뿐인 복음05: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1)(갈 1:6-10)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출애굽기 39장에서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강조가 10번 반복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교의 핵심사상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들이 613개에 이른다고 믿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613개의 계명들을 침해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지 아니한 수많은 울타리 법들(Gezeiroth)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 유대교인들에게 율법과 규례는 안식의 상징인 팔레스타인 땅과 민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서를 신약성서의 모형과 그림자로 이해하는 이유는 참 안식의 상징이 저 하늘 가나안땅이고, 인류의 영생이 걸린 문제는 보이는데 있거나 일시적인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고 영원한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과 규례들을 빈틈없이 지켜내려는 유대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대해서 그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고자 하는 그들의 가상한 노력을 높이 사서 배워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계의 문제점은 공리주의에 입각한 성공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고 무시하는데 있다. 왜곡은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유대교의 가르침과 구별하지 못하는데서 나타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다른 이유는 구약성서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인 신약성서 위에 바르게 서지 못하고, 구약성서를 신약성서 저자들이 이해했듯이 이해하지 않고, 신약성서 저자들이 해석했듯이 해석하지 않고, 유대교의 랍비들이 하듯이 왜곡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때로는 구약의 유대교인지, 신약의 그리스도교인지를 구별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다.

또 무시는 공리주의에 입각한 성공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일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데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신약성서의 가르침대로 다 행하는 교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뜻에 바르게 서려면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에로 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기 25장 40절,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때 복을 받게 된다.

구약성서의 이해의 충돌(1)

유대교인들의 장점은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 6:5) 지키려하는데 있다. 613개의 계명들뿐만 아니라, 랍비들이 만든 수많은 울타리 법들까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지키려한다. 그러나 단점은 하나님의 계명들의 근본취지와 뜻을 모른 채 랍비들의 왜곡된 해석과 전통들을 부지런히 따르는데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내적인 것, 영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 문자적인 것에 치우친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신약성경 저자들이다. 성막과 관련해서 그들이 새롭게 이해한 것은 보이는 지상성막이 보이지 않는 하늘성전의 그림자라는 것, 보이는 지상성막은 일시적이요, 보이지 않는 하늘성전은 영원하다는 것, 또 구약성경성막은 신약성경교회의 예표라는 것, 먼저 나타난 지상성막은 나중에 나타난 신약성경교회의 모형이요 그림자란 것이다.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을 떠돌이와 노예였던 히브리 민족을 찾아오셔서 독수리 날개에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시내산 기슭에서 언약체결을 하셨으며, 사막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물로 먹이셨고, 안식할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신 조상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유대민족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선민사상이고, 유대민족을 매우 특별한 민족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강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선민사상은 그들을 허물어뜨려 그들이 모멸하는 이방인의 나라들에서 수천 년을 떠돌이와 노예로 살게 한 목의 가시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였다. 그래서 타 민족들은 하나님이 없는 이방 민족들이었다. 세상에는 오로지 두 개의 민족, 즉 유대인과 이방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결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다. 선택된 자들만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선택의 목적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해서 그들을 선교사로 뽑았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자신들만을 택한 것이라 오해하고 있다. 이런 오해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없을까?

신구약성경 전체이야기는 세 가지 사건으로 압축된다. 구약성경에 두 가지가 있고, 신약성경에 한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 사건들은 다섯 개의 단어로 압축된다. ‘떠돌이,’ ‘노예,’ ‘해방,’ ‘언약,’ ‘선민’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매우 특별한 관계라는 점을 설명하는 것들이다.

구약성경의 두 가지 사건들은 출애굽사건과 바벨론 유배사건이고, 신약성경의 한 가지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다. 출애굽사건은 떠돌이와 노예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언약선민이 되는 이 땅의 모든 구원사건들의 원초적 사건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의 예표적 사건이다. 유대인들은 출애굽사건을 첫 번째 대구원사건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사건이 바벨론 유배사건인데, 일부 유대인들의 고토귀환이 70년 만에, 148년 만에, 혹은 173년 만에 세 차례나 이뤄졌지만, 이 두 번째 대구원사건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고, 여전히 희망하고 있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 유대인들의 입장이다. 주전 64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기 직전까지 대략 100년 정도 주권이 회복된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주후 70년 유대-로마전쟁의 대패로 인해서 비극적 유배사건이 다시 있었고, 그 정황이 참으로 처참하였다.

구약성서의 이해의 충돌(2)

유대인들의 두 번째 대구원사건을 다르게 해석한 것이 신약성경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 유대인들의 제1,제2 대구원사건의 원형이자 실체적 사건이었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설명이다. 바벨론 유배이후 예언자들의 이스라엘 회복과 메시아(모세) 등장에 관한 ‘희망’(하티크바)의 선포는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본 것이 신약성경 저자들의 입장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희망을 이루기 위한 대구원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오심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방식과 희망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방식과 내용으로’ 하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인간의 세속적인 희망과 기대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방식과 내용으로’라는 전혀 새로운 이해를 선포한 사건이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해 준 것이 고린도전서 1장 18절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과 22-25절의,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는 말씀이다.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의 유대인들이 설정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혀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설정하고 있다.

첫째, 구약성경의 유대인들이 설정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한 새로운 관계의 예표요 그림자였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이 율법(토라 혹은 계명)과 짐승의 피로써 ‘구약’(옛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선민이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독생자 하나님 그리스도의 복음과 피로써 ‘신약’(새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선민이란 점이다.

둘째, 구약성경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조상들의 하나님’ 또는 ‘유대민족의 하나님’으로 한정했다면,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모든 민족의 하나님’ 또는 ‘열방의 하나님’으로 또는 ‘온 인류의 하나님’으로 극대화시켰다는 점이다.

셋째, 구약성경의 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대민족과 타민족, 남성과 여성, 신분과 계급으로 나눠 차별하였다면,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들은 남녀노소빈부귀천민족에 관계없이 인류는 하나님의 한 가족이요, 아들과 딸들이요, 형제와 자매라는 하나님과의 매우 독특한 관계를 설정하였다.

넷째, 구약성경의 유대인들은 토라의 613개의 계명과 수많은 울타리 법들을 지켜야만 또 할례와 침례를 받고 유대교에 개종해야만 아브라함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구원의 축복을 독점하였지만,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또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으면, 은혜로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약속받고, 보증과 인침의 성령님을 선물로 받아 그분이 주시는 은사들을 가지고 천국생활을 맛보고 누리며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