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시스템(1839)
Christian System(1839)

조동호 목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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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크리스천 시스템 제1판 서문

제2판 서문

성경(제2장)

침례(제16장)

그리스도의 몸(제24장)

해설

캠벨이 저술한 모든 글 가운데 어느 것도 {크리스천 시스템,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과 초대 기독교에로의 환원에 관해서, 현대개혁을 변호하면서}(The Christian System, in Reference to the Union of Christians and a Restoration of Primitive Christianity, as Plead in the Current Reformation(Bethany, Va.: printed by A. Campbell, 1839)보다 더 영향력을 갖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아직도 출판되고 있다. 이 책은 이보다 몇 년 앞선 1835년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뜻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석될 수 있는 원리들과 법칙들의 한 연관된 견해}[A Connected View of the Principles and Rules by Which the Living Oracles May Be Intelligibly and Certainly Interpreted(Bethany, Va.: M'Vay and Ewing, 1835)]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아래의 글은 제1판과 제2판의 서문, 그리고 책의 여러 부분에서 선별되었다.

크리스천 시스템(제1판 서문에서)

우리 미국인들이 누리는 국가의 특권들과 시민의 자유들은 종교개혁가들의 덕택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 불멸의 명성을 쌓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을 위해 부유한 유산을 남겼다. 우리들이 이 미합중국의 현재의 상태를 라틴아메리카에 대조하고, 영국의 상태를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이탈리아의 상태와 대조할 때, 우리들은 마르틴 루터와 그 영광스런 개혁에 동참했던 그의 영웅적인 동료들의 지성과 믿음과 용기에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가를 깨닫기 시작한다.

루터는 주후 1534에 성경을 세상에 되돌려 주었고, 오만하고 포악한 로마교황청의 불경하고 방자한 거짓들에 대항하여 성경의 주장들을 대담하게 변호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루터가 죽었을 당시, 그를 이어 백성을 그가 죽은 광야에서 이끌어내어 성경의 깃발들 아래 규합할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 그의 신념들은 하나의 새로운 국가종교로 바로 바뀌었고, 그가 신명나게 활력을 불어넣었던 개혁의 정신은 유럽대륙과 섬나라들 모두에서 벌어진 개신교 왕들의 반목과 불화, 그리고 경쟁자들간의 정치적인 야심에서 비롯된 충돌들 때문에 곧바로 식어버렸다.

중략

그때이후로,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 신조들과 개혁들에 관한 모든 논쟁을 버리고, 초대 기독교를 회복하며,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가장 중요한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위에만 세우려는 첫 번째 노력이 있어왔다.

새로운 신조들과 새로운 교파들에 질리고, 개혁을 고치려는 수많은 실패로 끝난 노력들에 지치고, 성경말씀과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연합은 세상의 회심에 본질적이며, 어떤 신조의 수정과 개선 혹은 기독교세계 안에 당파설립은, 스스로를 대항해서 싸우는 교회에 평화와 일반구원에로 승리를 회복시킬, 그와 같은 연합과 교제와 협력의 기초가 결코 될 수 없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금세기가 시작할 무렵에 몇몇 사람들이 초대 기독교를 회복할 방법들과 수단을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성경은 홀로 말씀과 행동에 있어서 또 전문직과 실천에 있어서 유일한 성경이며, 이것만이 홀로 세계를 고칠 수 있고 교회를 구할 수 있다. 한때 우리가 우리자신들을 비판하였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비판한다면, 오직 성경만을 주장하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들의 견해들을 설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오직 성경만을 우리의 견해들에 적용하기 전에, 또는 우리의 견해들과 종교적인 실천들을 성경에 가져오기 전에, 우리들은 "성경은 홀로 개신교도들의 종교이다."라는 오래된 테마를 내세운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말투를 정정하고 오직 성경에 따라 우리의 스피치를 정화하는 것이, 몹시 힘든 임무이며, 20년 노동의 하나라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아직 우리들조차 아쉬도드(Ashdod)의 언어를 전면적이고 실제적으로 거부하지 않고있다. . . .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의 힘과 위로들 그리고 기쁨, 즉 거룩과 행복이 형식들과 의식들 속에서, 생각들과 추측들 속에서, 교파들과 분열들의 불화와 언쟁들 가운데서 상실되었다는 깊고 내재하는 느낌은 교파들 혹은 모든 교파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분명하고 성경적인 연합의 결속위에서 - "예수께서 이와 같이 가라사대"(thus saith the Lord)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음의 모든 조항과 신앙실천의 항목을 위해"(for every article of faith, and item of religious practice), 명백한 말이나 승인된 전례 속에서 취하는 것위에서 - 연합시키기 위해서 여러 해 전에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하였다. 이것은 1809년 펜실베니아주 워싱턴군(郡) 협의회의 "선언과 제언"에서 제안되었다. 그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고백하였던 교파들에게 처음 제출되었으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그리스도인 특성의 유일한 시금석으로 삼고, 교회연합과 친교 그리고 협력의 유일한 결속으로 삼는, 모든 이름의 개신교도들에게 동등하게 제출되었다. 그것은 진실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았으나, 미래를 만든 소수 혹은 소수 가운데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 의해서도 채택되거나 실행되지 않았다.

(제2판 서문에서)

우리들은 오직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크리스천 시스템의 우리의 믿음과 지식을 항상 기꺼이 선포하려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견해들, 혹은 잘못을 범하기 쉬운 유한한 인간의 견해들을, 교회 연합과 협력의 한 가지 조건이나 기초로써, 교리적으로 제출하는 것을 분명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필설로 우리가 믿는 모든 것,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세상 끝까지 선포하려하는 동안, 우리는 성경과 전체 성경 그리고 오직 성경만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교제의 기초로써 취한다(we take the Bible, the whole Bible, and nothing but the Bible as the foundation of all Christian union and communion).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더 우수한 방법을 부디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성경(제2장)

1. 한 분 하나님, 한 도덕체계, 한 권 성경. 만약 자연이 한 체계(조직)라면, 종교 또한 그렇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체계의 하나님이란 말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높은 지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연과 종교는 한 분 아버지의 형상 곧 동일한 신성의 혈통을 받은 쌍둥이 자매이다. 물질 세계의 체계만큼 분명한 체계를 가진 지적이고 도덕적인 세계가 있다. 인간은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인간은 동물이자, 지적이며 도덕적인 존재이다. 감성은 자연에서 인간의 안내자이며, 믿음은 종교에서, 이성은 자연과 종교 모두에서 인간의 안내자이다. 성경은 인간의 영적이고 영원한 관계에서 인간을 우선적으로 깊이 다룬다. 성경은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보여줘야 할 만큼 자연의 역사이다. 성경은 인간의 몸과 혼과 영혼에 관련해서만 자연 곧 우주를 깊이 다루기 때문이다.

2. 마치 태양계에서 태양이 위성들에게 그런 것처럼 성경은 인간의 지적 도덕적 세계에서 빛과 생명, 영적이고 영원한 것들의 원천이다. 전 인류에게 있어 성경에서 기인되지 아니한 영적 개념은 없다. 신학자가 유일무이한 최고의 책인 성경을 떠나서 인간에게서 영적 개념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철학자가 자연에서 독자적인 광선 하나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오래 걸릴 것이다.

3. 성경 혹은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쓰여진 신구약 책은 실존상태 그대로 인간에게 채택된 충만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담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인간의 현재(현존)와 의무 그리고 그것에 관한 중요하고 적절한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룬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인간의 과거에 관한 글이 아니며, 미래에 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인간의 현재에 관한 글이며, 의무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신체적으로, 천문학적으로, 지질학적으로, 정치적으로 혹은 형이상학적으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글이다.

4. 성경의 어휘들은 그 안에 모든 생각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 어휘들은 올바르게 이해되어지고, 그 안에 든 생각들도 명백하게 인지되어진다. 성경의 어휘들과 문장들은 다른 고대 문서들이 번역되어지고 이해되어진 동일한 해석법과 원리들에 따라서 번역되어져야하고, 해석되어져야 하며, 이해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어로 인간에게 말씀하셨을 때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처럼 즉 말의 올바르고, 규칙적이고, 잘 성립된 의미들을 가지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의 일종으로써 언어의 특성에 본질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계시일리가 없고, 또 인류에게 그것의 참 뜻을 풀어주고 해석해줄 특정계급을 언제나 요구하게 될 것이다.

5. 우리는 해석의 원리들과 법칙들에 관해서 자주 그리고 크게 언급하여왔다. 그것들은 신비적이고 우화적인 해석경향이 남아있는 이 시대에 본질적인 중요성과 유용성을 갖는 것들이다. 우리는 여기에 선임자들의 글들에서 뽑아낸 필수적인 해석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강도 있고 잘 요약된 전제들에서 얻어낸 것들이며, 과거와 현재의 세기들을 통틀어 유력한 번역가들과 가장 뛰어난 비평가들과 주석가들이 완벽하게 지켜왔던 것들이다.

6. 원칙1: 성경의 어느 곳을 펼치든지 제일 먼저 책의 역사적 정황들을 고려하라. 이들 정황들이란 배열순서, 책의 제목, 저자, 기록연대, 기록장소, 기록동기를 말한다.

역사적인 구성물에 있어서, 예를 들면, 모세오경이나 다른 여러 권으로 된 이야기들, 심지어 서신들과 통신문들의 첫 번째,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와 같은 배열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제목 역시 중요하다. 제목은 때때로 책의 기록목적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의미하는 출애굽기나 사도행전 등이 그렇다.

저자의 특이성, 그가 살았던 시대, 그의 스타일, 표현방법은 그의 저술을 설명한다. 기록연대, 기록장소, 기록동기는 책에서 어떤 내용을 올바로 적용하는데 있어서 분명히 필요하다.

원칙2: 어떤 책의 내용들, 예를 들면, 관련사항들, 인식의 결과들, 약속들, 권면들과 같은 내용들을 검토함에 있어서, 그것이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어떤 신의(神意)를 따라 저자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가를 관찰하라. 저자는 족장인가, 유대인인가 혹은 그리스도인인가? 대상자들의 선입관, 특성, 종교관계 등도 고려하라. 그들이 유대인들인가 혹은 그리스도인들인가, 신자들인가 혹은 비신자들인가, 인정받은 자들인가 혹은 비난받은 자들인가? 이 원칙은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명령, 약속, 경고, 훈계, 혹은 권면을 적절하게 적용하는데 필수적이다.

원칙3: 명령된 것, 약속된 것, 교육된 것 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언어학의 원리들, 언어의 본성에서 연역된 것, 다른 책들의 언어에 적용된 동일한 해석법이 성경언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원칙4. 증거로만 확인될 수 있는 공통사용은 한 가지 의미만을 갖는 어휘의 뜻을 항상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휘들이 증거(사전)에 따라 한 가지 이상의 뜻을 가질 때, 문자적인지 혹은 상징적인지, 그 범위, 배경 혹은 평행구들은, 만일에 공통사용, 저자의 목적, 배경, 그리고 평행구들이 결정하지 못한다면, 언어해석에 있어서 확실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뜻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칙5: 모든 수사적 언어에서 유사점을 확인하고, 유사점으로부터 문채의 본질과 종류를 판단하라.

원칙6: 설명되어진 요점을 확인하라. 왜냐하면, 비교는 그 요점이상으로 결코 확대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징들, 유형들, 은유들과 비유들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 원칙이 상징, 유형, 은유 혹은 비유의 모든 속성들, 특성들, 혹은 상황들에 우선한다.

원칙7: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하고 성화시키는 지력(智力) 때문에 다음의 원칙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는 거리 혹은 듣는 거리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 거리가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도 있고, 귀가들을 수 없는 거리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면 소리가 충분히 전달되는 원안으로 다가서야 한다.

침례(제 XVI 장)

1. 침례에서 고려해야할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시행되도록 명령된 행위; 둘째, 명시된 대상; 셋째, 그 행위의 의미나 목적. 예수는 어떤 인물(character)을, 어떤 행위(action)의 대상으로, 어떤 특별 목적이나 설계(design)를 위해 명령하셨다.

2. 아담의 수많은 방언을 가진 후손들을 통해서 일찍이 사용된바 있는 무슨 언어가 되었든 그 중의 한 단어만큼이나 행위(the action)는 명확하고, 분명하고, 결정적인 한 단어에 의해서 지적되어진다.

3. 오늘날의 논쟁에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명확하고 명백한 단어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 뱁티즘(baptism)으로 음역된 밥티스마(baptisma) 또는 밥티스모스(baptismos)이다. 고대의 사전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단어의 자연스런 보통의 일차적인 의미로 침수(immersion)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보아왔던 라틴어, 영어, 독일어, 불어로 번역된 모든 성경들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증거를 믿는 한, 우리가 보지 못한 모든 것들도, 종종 이들 단어들, 혹은 그것들의 파생어들, 혹은 복합어들을 침수(immersion)와 동일한 단어들로 번역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no occasion)에도 그것들을 뿌림, 혹은 부음, 혹은 이들 어휘들과 동일한 말로 번역하지 않는다. 고대 교회가 침수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이 널리 수용되고 있다. 믿을만한 로마와 헬라 그리고 영국의 역사가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4. 그와 같이 일반인들(persons)이 아니라 특정 인물들(characters)이 침례의 대상들이다. 회개하는 신자들(penitent believers), 어린아이들이나 성인들이 아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참회자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 예전의 적절한 대상들이다.

5. 침례는, 그러면, 그것의 대상들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축복들에 참례하도록 이끌도록 설계되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해서 다시 사셨다." . . .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형식적이고 독특하며 분명한 사죄를 받거나 유죄가 면제되는 수단(means)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증거를 처음 믿었던 자들과 그들의 죄를 회개했던 자들 그리고 총명하게도 그의 죽으심에로 침례를 받았던 자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죄 용서를 확신시키는 충분하고 명백한 하나님의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몸(제24장)

1. 세상에서 분리시켜 일종의 독특한 공동체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기관은 회중(congregation) 또는 주님의 교회(church)라 불리며, 교회는 자체의 법규와 제도와 관례와 관습들을 즉각적으로 세상의 구세주로부터 이끌어내게 한다. 이것은 때때로 기술적으로, 그리스도의 문자적이고 자연적인 몸과 대비하여 구별된, 그리스도의 신비한(mystical) 몸이라 불린다. 이 영적인 몸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머리이시며, 왕이시며, 주님이시며, 입법자이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그리스도의 지시와 관리 하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

2. 참(true) 그리스도의 교회 혹은 하나님의 집은 나사렛 예수를 참 메시아와 인간들의 유일한 구세주로 공개적으로 진정 인정하는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또 그들 자신들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움으로써, 그리스도 당신께서 신약성경에서 허락하시고 권위를 부여하신 헌법아래 모이며, 다른 아무 것 안에서 걷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의식들과 명령들 안에서만 걷고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3. 하나님의 회중(the congregation)이라 불리는 이 기관은 공동체들 중의 큰 공동체이다. 이 기관은 공동체들을 대표하는 한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가 동일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고, 동일한 법칙들을 따라 걸으며, 동일한 헌장을 지키고,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어떤 공동체의 사법권 아래 있지 않고, 개개인 제자가 어떤 주어진 장소에서 모이는 어떤 한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개개인 제자에게 소속되듯이, 다른 모든 공동체들에게 소속하고 있는, 많은 개별 공동체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4. 여전히 주님의 이 모든 개별 회중들은, 그것들이 로마에 있든지, 고린도에 있든지, 혹은 에베소에 있든지 간에, 그들 자신의 독특한 업무관리에 있어서 서로간에 동등하게 독립적이지만, 한 공동의 주님, 한 믿음, 한 침례, 그리고 한 공동의 구원이라는 이유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 왕국 또는 교회 그리고 그와 같은 기관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위대한 목적들을 최대한 진작시키기 위해서 서로간에 긴밀하게 협력해야할 의무들 가운데 있다.

5. 그러나 이 거룩한 단체와 교회들의 협력을 위해서 그들이 피차에 친밀하고 인정하는 지식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지방회들 안에서(in the form of districts)만 가능하며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과 형제들이 서로간에 알게되고, 다른 지방들의 교회들과도 서로간에 알게된다면, 그들은 지상의 과제를 이루는데 피차 협력할 수게 될 것이다.

6. 이들 지방들은 그들 사이에서의 통신과 협력을 유지하며, 일치와 연대행동을 요구하는 경우들이나 행사들을 지속하는 방법(manner)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국의 주변상황(circumstances)의 일부분이다. 어느 개별 공동체의 주변상황은 물론 이들 지방들을 위해서 사도들은 어떤 특별한 지시들을 내리지 않았다.

7. 그러나 성도들의 공동체들에게 무엇이 합당하고, 질서 있고, 온당한가와 기독교의 정황들 속에서 공적이고 실천적인 유용성을 확정할 이 필요한 자격을 수여함에 있어서, 기독교 기관(=교회)은 단 한 가지 일에서도 간섭 당할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질들과 비본질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든 기독교 안에서는 비본질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과 그것의 상황들 사이에서, 기독교 기관과 그것의 사건들 사이에서의 매우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다.<But in granting to the communities of the saints this necessary license of deciding what is expedient, orderly, decent, and of public and practical utility in the circumstantials of Christianity, no allowance is implied authorizing any interference with a single item of the Christian institution. Hence the necessity of a very clear discrimination, not between "the essentials and the non-essentials," for in Divine Christianity there are no non-essentials, but between the family of God and its circumstances, between the Christian institution and its accidents.>

8. 기독교 기관은 그것의 사실들, 훈계들, 약속들, 제정들 그리고 그것들의 의미 혹은 교리를 갖는다. 이것들은 정책과 배치와 편리성의 문제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불변의 제정과 지속성의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복음 기관의 믿음과 예배 그리고 의로움, 혹은 교리와 경건 그리고 도덕성은 인간의 법률과 변경 혹은 배치의 합법적인 논제들이 아니다.

9. 그러나 우리가 한 소속 지방의 교회들을 등록할 것인가 혹은 개별 교회의 교인들을 등록할 것인가, 우리가 주의 날에 한번 이상 모일 것인가, 혹은 몇 시에, 어떤 종류의 집에서 모일 것인가, 우리가 주의 죽으심을 오전에 혹은 오후에 기념할 것인가, 새벽에 혹은 밤에 할 것인가, . . . 우리가 책을 보고 찬송 부를 것인가 혹은 기억에 의존해서 부를 것인가, 산문으로 할 것인가 혹은 시로 할 것인가, 등등은 우리가 편리성과 격조 그리고 정연한 질서와 관련해서 자유롭게 생각해도 좋을 문제들이다. 또한 한 소속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편지로, 전달자들로, 혹은 정기적인 모임들을 통해서 일년에 한두 번 혹은 더 자주 서로 왕래할 것인가, 그들이 한두 사람 혹은 스무 사람 혹은 모든 교인들이 가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교제할 것인가 혹은 편지를 보낼 것인가, 그들이 매년 그들의 통계를 인쇄하고, 기록하고, 혹은 출판할 것인가 등은 전적으로 기독교 기관의 상황들일 뿐이다.

10. 그러나 협력 그 자체는 한 가지 일이요, 협력의 방법은 또 다른 일이다. 협력은 그리스도인들의 상호교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기관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더불어 기도에 힘써야"한다. 그리고 만약 그 주제에 관한 성경에서의 어떤 예문이나 훈계가 없다면,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개인들 혹은 공동체들로써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피차 위해서 기도하는 서로를 모든 면에서 돕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를 위해서 하는 우리의 기도들과 감사들은 단지 위선일 뿐이다. 국내외에서 진리의 진보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는, 단 일 불이라도 그 목적에 바치는 것을 그의 권세 속에서 갖는 것이며, 아직도 그것을 보류하고 있는 자는 그 자신의 기도들 위에 세운 가치가 얼마나 작은가와 그의 돈 위에 세운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준다.

11. 사도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협력하는 교회들의 협의회들은 지상의 정치적인 분할구역들에 따라 한결같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필요성의 문제라기보다는 편리성의 문제이다. 펜실바니아, 버지니아, 오하이오, 켄터키 등에 있는 교회들이 다른 어떤 구획들이나 분할지구들에 의한 협력보다 주(洲)들과 영토들에 의한 협력이 일반적으로 더 편리하고 성공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이것을 필요성의 문제라기보다는 편리성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협력하는 것은 필요성의 문제이지만, 한 군(郡)과 주(洲) 혹은 나라에 있는 교회들이 협력을 위한 정규적인 방법들과 수단들을 형성하는 것은 편리성의 문제이다.

12. 협력의 필요성은 모든 곳과 인간의 모든 협의회들에서 느껴진다. 그것은 하늘의 섭리의 일부분이다. 질서가 잘 잡히고, 합심하여 행동하며, 시온성 건설을 위해서 방법과 수단들을 도모하는 위원회들로 자주 함께 모이고, 사막마다 울타리를 치고, 울안의 논밭들을 경작하기 위해서, 메마르고 황폐한 곳에 물을 주고, 권세 있는 기도와 말씀전파와 성도들의 필요들을 공급함과 무지를 일깨움과 좋은 일을 행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안하는 일에 함께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의 열심과 경건과 인간성으로 뭉친 일백 개 교회들은, 주어진 기간 안에, 합심하지 아니하고, 협력 없이, 그들 각자의 능력에 따라 행동하는 같은 수의 교회들이 하는 것보다 배나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합된 힘은 지성적이고 진심에서 우러난 결합의 효과를 언제나 거둘 수 있다.

13.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 비록 많은 작은 공동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공동체가 이 큰 국가조직의 조직된 회원이고, 유일무이한 머리와 왕과 주(主)와 입법자이신 그리스도 아래서 공동체의 기도들과 구제와 계획들과 노력들 안에서 전 세계를 정복하는 - 교회 또는 그리스도의 몸을 한 공동체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들 개별 회중들 사이에 그들의 몇 가지 행동들에 대한 인정과 승인에 족할 만큼의 이해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회원들 또는 한 공동체의 조례가, 어떤 공동체내에서 그것들이 제안되게 될지라도, 국내에서 그들 때문에 존경받게 될 것이다.

14. 누구든 이들 협력에 관한 견해들에 대해서 사도적 승인들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서신들에서 풍부한 권위를 발견할 것이다. 그와 같은 일반적이고 우주적인 서신들의 바로 그 기초는 그리스도의 모든 공동체들이 단지 한 몸을 구성하며, 일반구원에 관한 모든 일들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나 상호간에 협력하도록 매어있다는 사실이다.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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