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번역 조동호 목사


차례

1. 회개란 무엇인가

2. 회개가 아닌 것

3. 회개로 이끄는 동기들

4. 회복 그리고 회개와의 관계

5. 회개의 필요성

6. 회개의 몇 가지 방해물들

질문들-회개

성경에서 회개의 촉구는 고대시대 때부터 나타나고 있다. 베드로는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자"라고 부른다(벧후 2:5). 직접적으로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노아는 틀림없이 당대의 사람들을 홍수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회개를 촉구하였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욜 2:12-14; 겔 33:11).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였다. 예수는 그분의 지상사역을 갈릴리에서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셨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교회시대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오순절 날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고 하였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향한 예수의 메시지에서 그분은 회개의 교리를 강조하셨다(계 2-3장). 이 두개의 장에서 예수는 여덟 번씩이나 '회개하라' 또는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회개는 성서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무였다. 주의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회개는 오늘날에 더욱 요구된다.

1. 회개란 무엇인가?

A. 회개의 정의

신약성서에서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이다. 이 용어는 "다른 마음을 갖는 것" 또는 "마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에 대한 그의 마음을 바꾼다. 회개는 구약의 단어 "돌이킴"에 해당한다. "메타노이나"에 대한 떼이어(Thayer)의 정의는 "더 좋은 것을 위해서 자기 마음을 바꾸는 것, 즉 자기가 지은 과거의 죄들을 미워하고 진심으로 고치는 것"이다(Thayer's Greek Lexicon, p. 405).

맥가비(J. W. McGarvey) 교수는 회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회개는 죄에 대한 후회로 인한 삶을 고치려는 의지(또는 마음)의 변화이다"(사도행전주석, 61쪽).

이런 정의들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의 세 단계를 주목해야 한다. (a)회개는 마음 또는 의지의 변화이다. (b)이 변화는 죄에 대한 후회에서 생겨난다. (c)이어서 행동이나 삶의 변화가 뒤따른다.

B. 회개의 실례

참된 회개는 고린도후서 7장에 있는 대로 고린도교회에서 설명되어진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들의 죄에 대해서 심하게 꾸짖었다. 그는 나중에 고린도후서 7장 8-9절에서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 썼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또는 회개로 인도하는) 것이요. . . ."라고 썼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더 나아가 그들을 회개로 또는 마음의 변화에로 인도했다. 구원이 뒤따라왔고, 그들이 회개한 결과였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또는 방탕한 소년의 이야기는 회개의 좋은 실례이다. 그 젊은이의 죄는 아버지의 권위와 가정에 대한 고집스런 배척에서 보여진다. 이 고집 때문에 그는 먼 나라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방탕한 생활로 그의 재산을 소비했다"(눅 15:13).  우리는 그가 돈과 친구를 다 잃고 먹을 것조차 없어서 돼지를 치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 그의 죄가 얼마나 깊었는가를 보게 된다.

그의 회개는 자기 처지에 대해 진실하게 깨달았을 때에 시작되었다. 예수는 "이에 스스로 돌이켜(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라고 말씀하셨다(눅 15:17). 이것은 죄 중에 있는 사람은 정신이 나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죄 중에 있는 사람은 판단이 흐리다. 젊은이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것과 자기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 가장 천한 종들보다도 더 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를 회개, 즉 죄에 대한 후회의 첫 단계로 인도했다. 죄에 대한 후회는 새로운 결심에로 인도했다. 그는 "내가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가리라"라고 말했다(눅 15:18). 그는 죄에 대한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이제 죄를 거부했고, 그것에 대해 후회했으며, 한 때 누린 죄의 쾌락에 지불한 무서운 대가를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이것이 회개로 향하는 두 번째 국면이다.

그러나 그의 회개가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삶의 "변화"와 "고침"이 있어야만 한다. 젊은이는 남은 생애 동안 후회와 새로운 결심만을 가진 채 그 돼지우리에 앉아 있을 뿐 결코 참으로 회개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그리고 그가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갔다"(눅 15:20)라고 말씀하실 때, 그의 회개는 완성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회개의 세 가지 요소들, 즉 죄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마음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삶의 개혁이 설명되어진 것을 본다.

2. 회개가 아닌 것

정의와 실례를 통해서 회개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였으므로, 이제 부정적인 면으로 눈을 돌려서 무엇이 회개가 아닌가를 보임으로써 회개에 대한 이해를 더 한층 도모코자 한다.

A. 회개는 후회와 혼동되면 안 된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고후 7:10)고 하였다. 그는 또 "내가 기뻐함은 너희를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하여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고후 7:9)고 하였다. 죄에 대한 후회는 회개로 이끄는 명백한 사전적 행동 또는 동기이지만, 그 자체는 회개가 아니다. 그 두 가지는 원인과 결과처럼 관계된다. 죄에 대한 후회는 원인이고, 마음의 변화는 결과이다. 혹자는 죄 자체에 대한 후회 없이 그 죄의 결과에 대해서만 후회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해서 후회한다 - 그들이 붙잡힌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사람이 결과에 관계없이 그 죄 자체에 대해서 진정으로 후회할 때에만, 이 후회가 그 죄를 버리도록 인도할 것이다.

B. 회개는 또한 개과천선과도 구별된다.

마태복음 3장 8절에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에게 말하기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다. 요한은 그들에게 변화된 삶과 의로운 행동, 즉 참으로 회개했다는 것을 보이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개과천선은 회개의 결과이지 회개 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도 악행들을 고치거나 심지어 그만 둘 수도 있다. 사람은 술취함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도 죽음을 피하려고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둘 수도 있다. 죄로 가득한 삶에 대한 진실한 마음의 변화가 전혀 없었을 때에도, 주변환경들이 사람의 행동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러면 개과천선은 회개의 열매이다.

C. 회개는 두려움과 혼동되면 안 된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회개로 인도하는 한 가지 동기인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두려움 그 자체로는 회개가 아니다.

사도행전 24장 25절에서 바울은 벨릭스에게 행한 연설에서, 의와 절제와 다가오는 심판을 거론하였다. 벨릭스는, 바울이 의를 거론하였을 때, 그것을 갖고 있지 않았고, 절제를 말하였을 때, 그것을 행치 않았고, 심판을 언급하였을 때, 그것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포에 쌓였다. 그는 바울에게 말하였다.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24:25). 바울이 떠난 후에 벨릭스의 두려움은 가라앉았고, 그는 마음의 변화나 개과천선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보여주지 않았다.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두려움과 눈물로 주장하지만, 그 후,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들이 회개한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삶을 산다. 두려움은 회개가 아니다.

3. 회개로 이끄는 동기들

성경말씀들은 사람을 감동시켜 회개하도록 하는 어떤 동기들, 즉 "활동력"이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을 이끌어 회개케 하는 첫 번째이자 아마도 가장 중요한 동기들은 다음과 같다.

A. 하나님의 자비 또는 사랑

바울은 로마서 2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9절에서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세상에서 가장 큰 동력은 사랑이다. 인간의 구원을 가능케 하려고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사람이 갈보리 언덕에서 보여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이해할 때, 이것은 동력이 되어 그를 회개로 인도하게 된다.

B. 죄에 대한 후회

우리는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라고 배운다. 사람이 죄가 어떻게 하나님과 그가 사랑한 자들과 친구들에게 해를 끼치는지를 깨닫게 될 때, 또 죄가 그에게 행한 것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후회하게 된다! 이것이 그를 회개로 인도한다.

바울은 또 이 구절에서 두 종류의 근심,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이 있다고 우리들에게 기억나게 한다. 전자는 구원을 가져오지만 후자는 사망을 가져온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이 두 종류의 후회를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주께 죄를 범했다.  베드로가 닭이 울고 주께서 그를 바라보심에 의해서 죄를 충분히 깨달았을 때, 성경은 "그가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라고 적고 있다(마 26:75).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부활주일 아침에 빈 무덤에 들어간 첫 번째 사도였다. 그는 남은 여생동안을 계속해서 주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의 마음의 변화는 참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를 삶의 변화로 인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께로 겸손히 돌아왔다. 거기서 그리스도는 그를 용서하셨고, 설교자로 내보내셨다.

가룟 유다도 주를 배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그는 자기 행동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후회하고서,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들에게 도로 가져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고 말하였다고 적고 있다(마 27:4). 우리는 이로부터 유다가 그의 마음을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틀림없이 죄에 대한 후회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개는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 유다의 회개에 대한 단어는 "Metanoia"가 아니라, 걱정 또는 후회의 감정을 의미하는 또 하나의 그리스어인 "Metamelomai"이다. 이 후회의 감정은 회개를 가져 올 수도 있고, 단순한 가책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유다는 주께 발생한 일에 대해서 후회하였다. 그는 분명히 그분이 유죄선고 받는 것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계획이 어긋난 것이 유감이었다. 그가 죄 그 자체를 후회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주께 돌아가서 용서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밧줄로 목매어 자살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했다. 그것은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유다는 사망을 이루는 세상적인 근심을 했다.

C. 심판에 대한 두려움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철학자들에게 연설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무지를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가 오셨고,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해졌다고 상기시켰으며, 또 하나님이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고 말하였다(행 17:30). 그들을 감동시켜 회개토록 하려고 바울이 그들에게 주고 있는 동기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전망이었다. 그는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라고 말하였다(행 17:31).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정말로 회개를 위한 최고의 동기는 아니지만, 때때로 아주 효과적이다. 종종 사람의 마음은 죄로 대단히 만연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거운 심판의 대포가 그것을 폭발시켜야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도달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회개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 모든 세 가지 동기들을 다 사용하시는 경우들이 흔하다.

4. 회복 그리고 회개와의 관계

회복은 사람이 행했던 잘못들을 고치는 행위이다. 성경은, 사람이 일단 회개하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그가 행했던 잘못들을 바로잡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세례 요한은 자기의 설교를 듣고자 찾아온 바리새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였다(마 3:8). 요한은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를 나타내는 어떤 증거 즉 "열매"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도행전 26장 20절을 보라.)

삭개오는 이 회복의 원리를 이해하였다. 주를 만난 후에 그는 말하였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예수께서 이것을 듣고 회개의 증거를 보시고서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수년 전에 어떤 사람이 우리 지역사회에 살고 있었다. 그는 사소한 도둑질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이웃집의 삽이나 갈퀴나 창틀을 집어가곤 했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훔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절도죄가 있었다.

부흥회기간동안에 그는 자신의 삶을 주께 굴복하였다. 그 지역에 사는 불신자들은 그 다음날 그를 조롱하며 그의 행동을 크게 비웃었다. 그들은 그가 이웃들에게 괭이, 삽, 창틀 등을 도로 갖다 주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는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이것이 아주 우습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사람도 그 새로운 개종자의 회심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죄를 고치려는 노력으로써 되돌려준 하나의 삽이 십 수 편의 설교보다 더 웅변적으로 그가 한 회개의 진실성을 밝혀 줄 것이다.

5. 회개의 필요성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위대한 위임을 주실 때,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 24:47).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눅 13:3). 바울은 아테네의 철학자들에게 하나님이 한때는 그들의 무지와 우상숭배를 간과하셨지만, "그러나 이제는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고 알려주었다(행 17:30). 회개는 매우 중요해서 인간과 멸망 사이에 서있는 첫째가는 행동들 가운데 한 가지이다.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는 그분께서 어떤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A. 회개는 소외된 죄인들에게 필요하다.

가장 큰 복음의 목적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그를 구원하기에 앞서 그의 마음이 죄로부터 정결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믿음으로 응답하는 개인들이 회개하고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에게로 세례를 받을 때 이것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기꺼이 회개하고 죄를 버릴 때에만 그를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소외된 죄인이 구원의 약속을 주장하기에 앞서 믿음을 통하여 회개하고 복음에 순종해야만 한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 이것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들이 깨끗하게 된다고 말한다. 

B. 회개는 그리스도인에게도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 범한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베드로는 사도행전 8장에서 이 질문에 대답한다. 시몬은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리스도에게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유혹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그는 죄를 지었다. 그의 죄에 대하여 심하게 꾸짖은 후에 베드로는 그에게 용서받는 방법을 말해주었다. 그는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하였다(행 8:22). 그러므로 두 단계가 필요하다. 즉, 회개와 용서를 위한 기도이다. 회개함 없이 하는 기도는 소용없는 일임이 분명하지만, 회개와 결합된 기도는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6. 회개의 몇 가지 방해물들 

A. 타고난 마음의 교만이 회개를 방해한다.

스데반은 공회가 그에게 돌을 던지기 직전에 그들을 심하게 꾸짖으며 말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7:51). 사람은 본성적으로 교만하다. 사람은 자기가 범죄 하였으며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교만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와 악을 인정하기보다는 잘못된 습관을 고수하도록 고무한다. 교만은 자신의 죄와 악을 인정하는 참되고 도덕적인 영웅적 자질을 앗아가 버린다. 겸손은 참으로 매우 귀중한 미덕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8:3). 탕자가 "교만을 억제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와 형에게 자기가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상당한 겸손을 필요로 하였다. 교만이 회개를 훼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B. 죄 많고 부패한 욕망의 권세는 또 다른 방해물이다.  

육욕적인 만족, 식욕, 더러운 쾌락, 정욕, 죄의 총체적인 형태들과 같은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과 관련되는 회개의 필연적인 결과는 정복되고 포기되어야 한다. 여기에 많은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항복이 있다. 술주정뱅이는 자기 죄에 대해 애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불타는 식욕이 그의 방탕한 습관을 버리려는 신중한 목적을 훼방한다. 후회는 회개를 암시하지만, 식욕이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망설이게 되고,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 <Ely V. Zollars, The Great Salvation(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mpany, 1805), p. 121> 

C. 지체는 회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의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벨릭스처럼 항상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만 있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한 채로 삶을 마감한다. 성경은 이에 대항하여 외치면서 지금이 구원의 때라고 우리들을 상기시킨다. 천국은 너무나 좋고, 지옥은 너무나 나쁘며, 영원은 너무 길어서 회개를 미룰 수 없다.

질문들-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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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개에 대한 맥가비(McGarvey)의 정의를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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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회와 회개와의 관계는_______________와 _______________와의 관계와 같다.

3. _______________은(는) 회개의 열매 또는 결과이다.

4. 회개를 훼방하는 세 가지를 쓰시오.

a.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b.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서 두 종류의 근심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들은 _______________와_______________이다.

6.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용서받기 위해서는_______________하고_______________해야 한다고 말한다(행 8:22).

진위(眞僞)-OX문제

------- 1. 회개에 대한 좋은 정의는 "죄에 대한 후회"이다.

------- 2. 회복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 3.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에 대한 유일한 동기이다.

------- 4. 겸손은 회개에 필요치 않다.

------- 5. 예레미야는 회개가 예언자들의 주요한 메시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렘 25:4,5).

Denver Sizemore, 13 Lessons in Christian Doctrine(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1991), pp. 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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