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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10 09:24
히든카드11: 가정의 위계질서(골 3:18-4: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05  

히든카드11: 가정의 위계질서(골 3:18-4:1)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8-19절에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사도 바울은 왜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였을까? 많은 이들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고 아내는 남편의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므로 세상에 나온 순서나 창조질서로 보더라도, 또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라도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 같은 신념 때문에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의 차별, 신분의 차별, 민족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 바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당신의 몸을 깨뜨리심으로써 이 같은 모든 담들을 허무셨다는 것이 신약성서 저자들의 신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위계질서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입장이었다. 모세가 율법에서 명한 이혼증서가 가부장사회에서 남편들이 아내들을 함부로 내쫓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고 볼 수 있듯이, 바울은 사회적 약자였던 당대의 아내들을 남편들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게 하려는 목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당대에는 부인이 남편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시대의 여성은 유대인이든, 로마인이든, 헬라인이든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었다. 노예가 주인에게 예속되듯이,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예속되었다. 여성에게 임신과 집안 일 말고는 법적 지위란 것이 없었다. 여자는 투표권도 없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이혼이 흔했지만 여성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폭력은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가장은 부인과 어린 딸을 매춘부로 내몰기까지 했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참금을 되돌려 받고 이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혼녀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었다. 가난은 여성들을 매춘부의 길로 내몰았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1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며 하나님의 위임권세를 주장하였다. 여기서 권세란 옳고 그름을 규정하고, 비행을 처벌함으로써 옳은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따라서 바울은 가정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아내의 남편이자 자녀들의 아버지인 가장에게 부여된 권위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신학자 하비 콕스는 하나님께서 십계명 제1-2계명을 통해서 우상을 만들거나 숭배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권세를 가진 자는 하나님 한분뿐이시며, 피조물인 인간들은 만인이 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깨우친 말씀으로 인식하였다. 권세가 인간의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권세가 없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권세를 타고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의 권세는 모두가 하나님의 위임권세요 잠정적이다.

권세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부(父)와 모(母), 특히 부(父)에게 가정을 치리할 권세를 주셨다. 중요한 것은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가족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가정에 위임된 권세 또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권세란 것이다. 바울은 쌍둥이 서신인 에베소서 5장 21절부터 6장 4절까지에서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녀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복종해야할 것인가를 권면하였고, 골로새서 3장 18-21절에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권면하였다. 가톨릭교회의 기도서에서 보듯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한가지로” 존재하신다. 남편은 아내를 통하여 아내와 함께 아내 안에서 자녀들과 한가지로 존재해야한다. 이것이 삼위일체식 존재방식이다.

신학자 몰트만은 국가든, 교회든, 가정이든 권세를 수직적 위계질서로 보지 말고,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순환관계로 볼 것을 권했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독재자 황제, 교황, 아버지를 만들고, 또 황제들은 “신의 아들,” “신(神)과 주(主)”를 참칭하며 백성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노예로 삼았다. 교황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 주장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섬기지 않고 지배하였고, 아버지도 부인과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괴롭게 하고 노엽게 하며 낙심시켰다. 바울은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들로서 종의 자세를 가지라고 권면하였다. 그 권세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의 실현을 위해서 위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들아... 상전들에게 순종하라.”

바울은 22-25절과 4장 1절에서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고 권면하였다.

바울은 신분차별을 허용치 않았지만, 사회제도를 바꾸려고도 하지 않았다. 바울은 사회개혁이나 혁명의 성패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족색깔 성별신분의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그래서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뤄지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당대의 노예제도를 정치적으로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인 종들에게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책임을 다할 것을 권면하였고, 그리스도인 주인들에게는 종들을 형제처럼 여기라고 권면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도 노예도 동일한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요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17절에서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18-20절에서는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라고 권면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바울의 이 권면이 선악과 행불행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가르친 스토아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7장 21-24절에서 바울은 그가 왜 그토록 매몰찬 권면을 했는가를 부언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비록 그들이 이 세상나라에서는 노예일지라도, 더 좋은 하나님나라에서는 자유시민이요, 하나님의 식구이기 때문에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비록 그들이 이 세상나라에서는 자유인일지라도, 더 좋은 하나님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