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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2.15, 11:46 |
| 최윤권 목사 “고아들 아버지로 헌신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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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스도의교회 원로이자 사회복지법인 지온보육원 설립자인 최윤권 목사의 고희 및 성역
40년 감사예배가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그리스도의교회 교단 관계자와 교계 인사,사회복지계 인사,성도,보육원 어린이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부 예배,2부 헌사 및 예물증정,3부 교제시간 등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최목사의 목회 여정과
고아들의 아버지로 복지사업에 헌신한 내용 등이 소개됐다.
1부 예배는 대전교회 편무해 목사의 사회,서울기독대학교 이사장 현기원
장로의 기도,남부중앙교회 김광준 목사의 성경봉독,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장 지원용 목사의 설교,예장대신총회장 김춘국 목사 예감 감독 신신묵 목사
한국아동복지시설연합회 김득린 회장의 축사,최윤권 목사의 답사,한국목회대학원장 함명덕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최목사는
1932년 2월13일 한국 그리스도의교회 최초의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고 최상현 목사의 3남으로 서울 평동에서 출생했다. 19세에 부친이
납북되는 고난 속에서 학도병으로 6·25에 참전,육군 중위로 예편했다. 1955년 미국에 유학,60년 목사안수를 받고 61년 귀국해 40년 동안
도원그리스도의교회,중앙그리스도의교회를 비롯,7개의 교회를 개척하거나 담임했다. 65년 서울기독대학교 전신인 대한기독교신학교를 설립했다. 지난
66년 고아들의 보금자리인 지온어린이의집 및 보육원을 설립,35년간 500여명의 자녀를 양육해 사회에 배출했다. 이날 고희 기념예배도 고아 출신
자녀들이 마련해준 것이다. 최목사는 64년 잡지 ‘환원’을 발간,성서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을 펴고 있다. 지난 97년에는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최목사는 이날 답사에서 “오늘까지 오게 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뒤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환원상을 제정,좋은 인재를 배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환원운동 확산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승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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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교회 협의회 회장 최윤권 목사
“대한기독교대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기본방침도
교단과 마찬가지로 `성서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에 있습니다.또 우리학교는
학생들에게 실천하는 신앙을 제일로 가르칩니다.신앙인으로서 실천이
없는 믿음은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협의회 회장 겸 대한기독교대학교 총장인 최윤권목사는 “기독교대학교는
21세기를 위해 선교사나 사회봉사자 교역자를 배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최총장은 학교 역시 초대교회처럼 하나가 되자라는
이름아래 뭉쳐있기 때문에 졸업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교단에 나가 마음껏 봉사하도록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총장은 특히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봉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한편 각 봉사지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이와함께
학교는 요즘 각 교단에서 앞다투어 하고 있는 북한주민 돕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한발 나아가 북한선교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기독교대학교의 학생수는 5백20여명.97년 대학교로서 인가를
받고 서울 은평구 신사동으로 학교를 옮기면서 질적 양적으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앞으로는 학과수나 대학의 발전을 위해 교단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최총장은 유무 악기 사용의 형식으로 나눠진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총장은
그리스도의 교회 태동에 앞장 선 최상현목사의 아들로 63년 기독교대학교의
전신인 대한기독교 신학교 초대교장으로 취임한후 2대,6대 학장을 역임했다.
<유연옥/99-05-02 >
대한기독교대학교 2대총장 최윤권총장
“기독교 정신,특히 성서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학생들사이에서 실천하려고 합니다” 대한기독교대학교 2대 총장으로
최근 취임한 최윤권박사는 대학에서부터 기독교정신 환원운동을 활성화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총장은 고 지원상목사의 형 지원용목사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미국 산호세기독교대학교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교수를 지낸 석학이다.연희전문 1회 졸업생으로 독립선언문을 영역해
전세계에 알린 독립운동가이자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창립에 관여했던
고 최상현목사의 자제다. 65년 대한기독교신학대학을 설립,81년
서울 성서신학교와 통합해 현재의 대한기독교대학교로 가꿔왔으며 지난해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다. “우리 대학의 목표는 교회봉사자와
사회봉사자,정말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최총장은
기독교사회복지과로 유명한 대학을 더욱 사회복지 실천신학분야의 특화대학으로
키우고,교회음악과와 기독교교육학과도 신설해 기독교정신을 실천하는
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최총장은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며 65년 효창동의 사저를 개조해 고아들을 모아 돌보기도
했다.지난해 정부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대한기독교대학교는
96년 최총장이 내놓은 사재 1억원을 종자돈으로 교단산하 전국의 교회들이
보내온 헌금을 모아서 지난해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대학부지에 환원교육관을
건립했다.최총장은 학교명칭을 기독교대학교로 개칭해 교육부에 청원해
놓았다. <이승한/shlee@kukminilbo.co.kr/98-09-08 >
[줌업] 고 최상현목사 조명 활발
◁고 최상현목사 재조명작업에 나선 대한기독교대학교
최윤권총장(오른쪽) 암울했던 일제치하,소망을 잃은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 고 최상현목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작업이 진행된다.`청년의
세계' `영 데이' 등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줬던 최목사의 사상과 목회일생은
최근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에게 용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고 최상현목사는 1891년 평남 용강군 신녕면 신덕리에서 생원 최지우의
아들로 태어나 진남포의 삼숭학교를 거쳐 1912년 숭실고등학교를 졸업했다.그뒤
서울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1919년 1회로 졸업했다.최목사는 졸업후
동대문교회 전도사로 부임해 1년간 시무했고,연희전문 조교수와 동창회장을
하면서 독립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구속되었다가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해 연경대학에서 공부했다. 1921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협성신학교에서 종교서적을 탐독하고 청년만이 나라의
희망이라는 확신을 갖고 세계위인전을 펴내고 협성신학교에서 출간하던
`신학세계'의 주간을 맡아 신앙운동을 펼쳤다.또 시 `새로운 희망'
`고독으로 비애에'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등을 발표하고,최남선
방인근 전영택 이은상 임영빈 등과 함께 기독교문학운동을 주도했다.
1925년에는 `영 데이'란 잡지를 만들었고,1929년 `조선청년의
활로'라는 책을 직접 집필해 청년들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그는 이
책에서 조선청년들은 세계화에 눈을 뜨고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무슨
일이든지 확신을 갖고 일하라고 격려했다.최목사는 감리교에서 목사안수를
받고,1936년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사 체이스를 만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을 펼쳤다.미군정 고문직을 맡아 고아·빈민돕기운동에도
헌신했으며 6·25때 북한군에 납치,행방불명됐다.최목사 조명작업은
대한기독교대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곧 사상집과 일대기를
펴낼 예정이다. <이승한/shlee@kukminilbo.co.kr/9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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