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단 동 정
인터뷰기사
교 단 소 개
기독예술인
교 회 탐 방
노봉욱장로
목회자설교

 

목회자설교

 

[금요설교-심한우] 오늘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자

본문:히브리서 3:13∼15

수많은 세상사람 중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하나는 과거 지향의 사람인데 이들은 지난날의 일들만을 생각하며 과거에 매여 살아갑니다.또 하나는 미래 지향적인 사람인데 이들은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생각하며 막연하게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 염려와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세번째는 오늘 하루를 값지고 보람있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이 글을 읽는 당신은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해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은 오늘 하루밖에 없습니다.어제는 이미 우리에게서 흘러가버렸고 내일은 우리가 맞이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모릅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고 했습니다.오늘 하루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돌이켜 반복할 수도 없습니다.그래서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고 말씀했습니다.흘러가는 시간을 의미없이 흘려보내지 말고 나의 것으로 잡으라는 뜻입니다.

세월을 살아가며 시간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세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예수님의 비유중에 나오는 여리고 도상의 강도같은 사람이 그 첫째입니다.그는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악하게 관리한 사람입니다.다음에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지나쳐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값진 시간을 아무 의미없이 소비해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마리아인은 불행당한 사람을 위해 편견을 버리고 온갖 정성을 기울여 자기가 할 수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한 생명을 구했습니다.세 종류의 사람에게 똑같이 하루가 주어졌지만 하나는 하루를 악하게 만들었고 또 하나는 아무 의미없이 하루를 낭비해버렸고,하나는 한 생명을 구하는 참으로 값진 하루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의 일생을 만듭니다.하루를 잘못 살면 일생이 잘못되고 하루를 잘 살면 일생이 잘 됩니다.아울러 하루의 불행이 일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하루의 행복이 일생을 행복하게 만듭니다.저는 치유목회연구원에서 영성훈련에 관한 한 과목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미리 가보는 나의 장례식’이라는 것인데 참여자들에게 자기의 장례식을 연상하게 하면서 몇몇 질문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장례식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나,친숙하게 대했던 사람중 안보이는 사람은 누군가,누가 내 조사를 읽는가,무슨 내용으로 읽는가,장례식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조사를 스스로 써보기도 했습니다.언젠가는 피할 수 없이 맞이할 그날인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나의 일생이 어떻게 평가될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오늘을 후회없이 살았다면 그 일생도 후회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루하루를 은혜와 평강의 날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오늘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임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매일매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날입니다.나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살아갑시다.오늘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살아갑시다.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을 만족하며 살아갑시다.언제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그러면 참으로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심한우목사<강릉그리스도의교회>
<국민일보 99-11-04>

대가없이 베푸는 은혜 /최상호 시흥그리스도의 교회(생명의 시냇가)

▷오늘의 말씀◁

본문: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마음에 항상 품고 있어야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은혜」란 말의 뜻은 「값없이 거저준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총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의 육체를 괴롭히는 가시때문에 나온 것입니다.이 가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바울 사도는 삼릉천,즉 천국을 본 사람이며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보았고 수많은 사람을 구원했으며 또한 병자를 수없이 고친 하나님의 일꾼으로 신약성경중 13권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자기 몸을 찌르는 가시가 있어 이것을 제거해 달라고 세번이나 주께 간구하였으나 주께서 제거해 주시지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어 답답하고 괴롭지만 낙심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형편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 응답해 주실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첫째로,구원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족합니다.

바울 사도는 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로서 아주 열심있는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을 많이 배운 사람으로 그가 믿고 있는 바를 대적하는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없애기 위해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구원은 오직 한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구원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요 믿음은 인간편에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반응인 것입니다.따라서 성경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시련과 고통의 날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족합니다.

우리의 삶속에 때로는 시련과 고난이 무엇때문에 오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언제나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아가는 앞길에는 여러가지 시련이 높여 있으나 그 시련을 징검다리 건너듯 발판으로 삼을 때 평안을 얻게 됩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시련속에서도 만족합니다.

셋째,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족합니다.

거듭난 신자라도 완전치는 못합니다.가끔 범죄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거듭난 성도라면 그 죄의 자리에서 평안치 못하여 안주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라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가 남아 있는 한 결단코 기쁨과 평안을 가질 수 없음으로 용서와 평화의 십자가를 찾아야만 합니다.요일 1장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외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솔직히 회개하면서 자백할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을 죄를 지었을 때도 알게 됩니다.<서울 시흥5동 245의 17·803­0281>

◎“은혜 사모하고 인내하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항상 은혜를 베푸셔서 새로운 힘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시련이나 고통이 찾아와도 불평과 원망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인내를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겸손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만 의지하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승리케 하옵소서.능력과 은혜를 주셔서 어떤 시련도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서울 시흥5동 245의17,803­0281/94-06-06

벧세메스로 가는 소 /유봉현 성동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 설교

▷사무엘상 6장10∼16절◁

블레셋은 군사적으로 강력한 집단으로 항상 이스라엘에게 위협적인 나라였습니다.본문 말씀도 법궤를 빼앗긴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

사실 이스라엘이 본문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원인은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법궤만 있으면 만사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었습니다.하나님은 죄를 회개치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안겨주시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은 이사야 59장1,2절을 통해 죄와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법궤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역사했습니다.이스라엘에게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던 법궤도 블레셋인들 속에서 징계의 역사를 보여줬습니다.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아스돗에 있는 자기들의 신 다곤(기후의 신) 곁에 갖다 두었습니다.자기들 신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그러나 다음날 아침 다곤의 상이 법궤 앞으로 넘어져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은 우연이거니 하며 그 상을 다시 세웠습니다.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그 머리와 두 손목이 아예 끊어져 문지방에 있었고 상은 몸뚱이만 남아있었습니다.

우상의 무능력함을 깨닫게 해준 법궤는 이리저리 옮겨졌습니다.그러나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나타났습니다.

○동물 등 통해 섭리 전달

하나님께서는 손상된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회복하십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의인에게는 구원과 기쁨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심판과 진노로 다가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결국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냅니다.이 때 블레셋 사람들은 속건제물과 함께 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 보냈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은 얕은 꾀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재앙의 근원이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블레셋 사람들은 멍에를 매어보지 못한 소를 끌어다가 수레를 끌도록 했습니다.그리고 만약 소가 벧세메스로 가면 이 재앙이 여호와께 말미암은 것이고,그렇지 않으면 우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그러나 그 소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벧세메스로 갔습니다.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인간을 사용하시기도 하고,혹은 동물이나 천재지변을 이용하기도 합니다.따라서 우리는 매사에 그의 뜻과 섭리를 알기 위해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믿음 제일주의로 살자

블레셋 사람들이 벧세메스로 보낸 이 소를 통해 우리는 전 생애를 통한 헌신을 깨닫게 됩니다.우리의 몸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려 목숨을 바치도록 충성해야 합니다.하나님은 각자에게 하나의 사명을 주셨습니다.이 일을 하는 것은 의무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벧세메스로 가는 소처럼 우리의 생명을 전적으로 드려 주의 일이면 시간의 내어서 예비하고 매사에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각처에 나타내어 어두움을 밝히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6-11-22 >

 


ⓒ copyright    C · C· S